서울에도 수줍은 사람 있어요
(명) 수줍어하는 기색이 없는 사람.
서울이라는 편견 아래
까투리를 가두었네, 기어코
까투리는 입에 익숙한 단어다.
그저 새의 종류라고만 막연히 생각했는데, 사전을 보고 나서야 '꿩의 암컷'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았다.
그런데 왜 하필 서울까투리일까?
그럼, 시골의 까투리-지방 까투리는 늘 얌전하고 수줍은 이미지로 그려질까?
까투리와 수줍음 없음 사이에는 직접적 연결고리가 없다.
언어는 늘 그렇다. 실제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이미지와 상징으로 굴러간다.
그 장난스러운 조합에서 새로운 뜻이 탄생한다.
‘서울’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뜻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거침없고 당돌하다. 눈치 따윈 보지 않는다.
도회적인 세련됨과 거리낌 없는 솔직함이 한꺼번에 붙는다.
서울까투리는 그래서 재밌는 풍경을 만든다.
시골 까투리가 풀숲에 조용히 숨어 있다면,
서울까투리는 시장길에서 목청을 높이는 사람 같다.
수줍음은 이미 뒷전,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내보인다.
수줍음 없는 당돌함은 때로는 무례로,
때로는 솔직함으로 받아들여진다.
듣는 귀에 따라 호감이 될 수도, 불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안엔 꾸밈없는 에너지와 솔직한 힘이 있다는 것.
서울까투리는 수줍음 없는 얼굴 뒤에,
있는 그대로 살아가려는 태도를 담고 있는 듯하다.
물론 서울에도 수줍은 까투리는 많다.
대담해 보이는 사람도 가까이 다가가 보면 의외로 소심하고, 여린 구석이 숨어 있다.
수줍음 없는 모습과 수줍은 얼굴은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한다.
단어는 한쪽만 가리키지만, 현실 속 사람은 언제나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이건 확실히,
지역색의 편견이 발동한 시선이 담긴 단어다.
까투리~~ 까투리~~~
까투리까투리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흐야~
편견을 때려잡고,
있는 그대로 까투리이이~~
주변에 '서울까투리'같은 사람이 있나요?
'서울'이라는 단어 안엔 어떤 편견이 숨어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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