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지도 모릅니다.
한 번 더 말하면,
애초에 당신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의 종류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면서 집착하는 행복 중에 늘 한결같은 게 있습니다.
가족일수도 있고, 애인일수도 있고, 직업일수도 있고, 돈일수도 있겠죠.
그런데 늘 한결같이 바라는 그 행복이 또 늘 나를 비껴간다면,
정말 간발의 차로 어긋나버린 행복이라면 더 갈증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여겨버려요.
왜 늘 나는 실패할까.
그리고 그 놓친 행복은 내 행복의 총량이 되어 버리죠.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상처, 트라우마라고 부르나 봅니다.
저한테도 그런 게 있어요.
사실 굉장히 닿을것만 같은 거리에 있는데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만 같은데
나에게는 유독 허락되지 않았던 그것.
내가 바라는 수준이 정말 이상적인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 조금의 정도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만 같죠.
그런데
늘 그렇게 되니 이상하게 그런 류의 행복이 실패할 때는
다른 행복이 실패하거나 지워질때보다
유독 심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 같아요.
화가나죠. 슬프고, 또 그런데 어디 풀데는 없어요..
왜냐하면 내 주변 사람들도 내가 실패한 횟수만큼 내 푸념을 듣는거거든요.
그들도 잘 될거야.. 라는 말이 지치겠죠.
그래서 생각해보다가 문득,
내가 애초에 가질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이 모든 행복을 다 가질수는 없겠죠. 그래서 희노애락이라고 하나보다.
희/노/애/락이 반복해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 4가지가 늘 함께 갈 수도 있겠구나.
그 중에 내가 늘 쫓는 그 행복은 '애(哀)'일수도 있겠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포기일수도 있고 인정일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미루거나 기다리는 일일수도 있죠.
그런데 그렇게 한 번 생각하고 나니
조금 씁쓸하기는 하지만, 왠지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내 주변에 '희(喜)'로 함께해 주는 행복을 찾아보게도 되고.
당신에게도 그럴지 모릅니다.
애초에 당신이 가질 수 없는 행복일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혹 잘될거야, 노력하면 될거야라고 위로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 스스로는 알지도 몰라요. 그냥 내 것이 아닐거라는 걸.
다른, 늘 곁에 있는 다른 행복을 한 번쯤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시작되는 연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