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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첫 만남 (그녀의 이야기)

아내 씀 남편 그림

by 우마왕

호피무늬 H라인 스커트에, 검정색 티셔츠, 거기에 검정색 카디건을 입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누가 뭐래도 그 날의 나의 컨셉은 정확했다. 남자들은 보통 호피무늬 의상을 싫어한다고 하니(잡지에서 본 적이 있다), 나의 이 전투적인 의상을 보고 나가 떨어져라. 나를 제발 맘에 들어하지 말아라!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사연이 있다. 서너번의 악몽같은 소개팅 이후 나는 소개팅에 대한 기대를 말끔히 접었다. 그래도 좋은 옷 한 벌씩 사서 입고, 최대한 예의 바르게 상대방과의 만남에 임했던 나와는 달리 소개팅 상대들은 대개 무관심하거나 무례했다. 인연이 아니라서, 라고 지금에서야 여유롭게 곱씹지만 그 당시에는 하루종일 기분이 나빴다.

회사 동료의 소개로 나갔던 그와 나의 소개팅은 이전 만남들의 아픈 딱지가 채 아물지 않은 상태, 더 정확히는 동료의 얼굴에 먹칠하기 싫어 억지로 나간 것이었다. 오늘 한 번만 보고 더는 만나지 맙시다, 라고 내 표정과 호피무늬 치마가 말하고 있었다.


퇴근 후 만나기로 한 광화문 교보문고로 갔다. 책을 더 이상 읽거나 보고 싶지 않아 (나는 서점에 다닌다) 교보문고 한 켠에 자리잡은 푸드코트 의자에 엉덩이를 쭉 뺀 상태로 지친 몸을 뉘었다. 잠시 후 그에게 걸려온 전화, 인문/사회 코너에 있다고 했다. 축 저진 몸을 도로 일으켜 그를 만나러 갔다. 짜잔.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도 배시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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