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씀 남편 그림
집안일, 이라는 단어로 집약되는 청소, 빨래, 요리, 설거지 등의 가사일 중에 나는 빨래를 제일 좋아한다. 대학생활을 기숙사에서 하면서부터 뭔가 일이 잘 안풀리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손빨래를 했다. 조물조물 빤 옷을 탁탁 털어 빨랫줄에 널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졌다. 세탁세제의 경쾌한 냄새와 섬유유연제의 향긋한 향도 좋아한다. 한때 향수도 마른빨래 향이 나는 것을 썼고,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향초의 향은 깨끗하게 세탁한 옷의 향을 닮았다.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을 때 나는 기숙사 건물 2층에 살았고, 1층엔 아주 큰 런더리룸이 있었다. 반은 세탁기, 반은 건조기로 채워진 런더리룸은 기계 소음으로 조용할 날이 없긴 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였다. 한 학기를 마치고 기숙사에서 나와 유대인 가족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하루는 세탁기가 고장이 났다. 아줌마가 당분간은 근처 코인세탁방을 이용해달라고 했고, 드디어 새로운 세탁기가 들어와서 맘껏 빨래를 할 수 있게 된 날 나는 정말 신나서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나의 흥분을 마구마구 표현하기도 했다.
내 살림을 꾸린 지금의 나는 거의 매일 빨래를 한다. 일단 빨래가 바구니에 마구 쌓여있는게 싫고 빨래야 뭐 세탁기가 다 해주는데 어려울 게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굳이 우리집 가전제품 중에 가장 사랑하는 애를 고르자면 역시 세탁기다.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자주 빨 수 없는 니트나 아우터들은 '에어탈취' 코스를 통해 밖의 냄새와 먼지를 빼고, 운동을 하고 나서는 운동복 등등을 넣고 시원하게 빨래를 돌린다. 우리집 세탁기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빨래를 건조대에 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향긋한 빨래 냄새를 맡으며 나는 생각한다. 아, 트롬 건조기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