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씀 남편 그림
나는 요리를 즐기고 잘하는 편이지만 유독 칼질이 서툴다. 제일 잘하는 건 깍둑썰기, 제일 못하는 건 채썰기. 요리도 성격과 닮아 꼼꼼하지 못하고 제멋대로다. 그런 나는 계량도 정확히 하지 않고 건방지게 눈대중으로만 요리하곤 한다. 정확한 계량을 요구하는 제과제빵은 성격에 맞지 않아 포기한지 오래다. 또한 나는 소량의 음식은 잘 만들지 못한다. 손은 어찌나 큰지 30년전에만 태어났어도 부잣집 맏며느리감이었을 것이다.
남편도 요리를 잘하는 편이다. 고등학교 때(=남들 다 공부에 매진할 때)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요리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같이 다녔던 친구 두 명은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남편은 신부수업 중이었던 옆자리 누나에게 미나리를 양보하고 장렬히 시험에서 탈락했다. 그래도 기초는 잘 익혔는지 칼질을 세심하게 잘하고 무엇보다 내가 옆에서 유리잔을 깨든 참기름을 쏟든 화내지 않고 잘 보듬어준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나의 요리실력을 비로소 알게 됐다던 남편은 보너스를 받은 사람처럼 좋아했다. 그가 나에게 원한건 요리를 잘하는 아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맘대로 요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