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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마왕 Oct 11. 2019

밥 굶는 것 보다 더 견디기 싫은 곰팡이 번식

위닉스 뽀송 제습기, 20만원

여름 장마철도 아니고 겨울에 방이 습하다니.

때는 겨울이었다. 내가 살고있는 건물은 입구에 들어가기만 하면 따뜻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온 주민들이 보일러를 풀가동했다. 가스비가 관리비에 포함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여튼 그래서 방이 엄청 건조하겠다 생각하던 찰나, 이게 웬걸? 방에 습한 기운이 맴돌았다. 여름 장마철도 아니고 겨울에 방이 습하다니. 가습기를 사야 할 계절에 제습기를 고민하게 되었다.




내 집안일의 5할은 빨래에 집중되어 있다(나머지 5할은 청소, 요리는 없다). 부모님과 같이 살던 집에서는 햇볕이 엄청 잘 드는 집이라 모든 빨래는 삼겹살을 바싹 굽듯 옷도 바짝 말릴 수 있었다. 나와 살게 될면서 그정도 햇빛까지는 바라지도 않았고, 단지 겨울이 되면서 보일러를 틀면 집이 건조해지니 빨레가 잘 마를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와서 느꼈던 대로, 집은 눅눅한 기운이 살짝 있었고 빨래 마르는 속도는 점점 더뎌졌다.

Photo by Sarah Brown on Unsplash


그때는 난 이미 160만원짜리 카메라 할부가 중반쯤 진행된 때였다. 아직 매월 30만원 정도의 지출도 타격인데 제습기를 또 사려니 선뜻 결제하기가 어려웠다. 자취경험이 있던 친구의 말로는 5만원 짜리 제습기도 충분히 쓸만하고 빨래가 잘 마른다고, 원룸 평수에는 작은 것도 충분하다고 얘기했지만 내 성에는 영 안 찰 것 같았다. 거의 직사광에 가까운 햇빛에도 몇날 몇일을 말리던 나였는데, 손바닥만한 제습기가 성에 찰 리가. 그래도 난 지금 돈이 없으니, 괜찮은게 있나 싶어 리뷰를 열심히 읽어봤는데 다들 빨래가 완전히 마르지는 않다느니, 소음이 꽤 심하다느니 말이 많았다. 아무래도 괜히 허접한 제품을 샀다가 후회만 하고 고통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전제품 유통관련 일을 하는 친구에게 혹시 제습기 아주 무난하고 많이 쓰는 거 알고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단숨에 한 브랜드를 추천해주었다.   


가격은 20만원 대, 가격 앞에 또 다른 고민이 들었다. 내가 이 작은 자취방에 이만한 가전을 들일 이유가 있을까? 내가 빨래에 대한 집착이 심해서 괜히 큰돈을 쓰는게 아닐까, 습도를 내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흘째 집에 들어올 때마다 바닥에 눅눅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보고는 이러다 진짜 큰일 나겠다 싶었다. 곰팡이가 어디에도 있지는 않았지만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곰팡이를 발견한다면 나는 주저앉아 울고 말았을 것이다. 지상층인데 곰팡이가 웬말이냐, 난 이제 곰팡이랑 같이 살아야 하는 건가...하면서 말이다. 상상만해도 호흡기와 피부가 안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나는 얼른 외양간을 고치기로 다짐했다.


20만원을 6개월로 쪼개 3만원씩 할부를 했다. 한달에 세끼, 네끼정도 굶지 뭐. 그렇게 식비까지 포기하며 산 제습기, 자취 인생 최고의 소비라고 단언하게 됐다. 나갈 때마다 빨래가 있을 때는 5~6시간, 없으면 2~3시간 정도 예약꺼짐을 걸어놓으면 퇴근 시 뽀송한 집 컨디션을 맞이할 수 있었다. 겨울은 물론, 비가 오고 습하던 한여름에도 집이 눅눅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전기세도 많이 안 먹는다. 그리고 집에 와서 제습기가 빨아들인 물을 잔뜩 버리다 보면 내 걱정도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곰팡이 걱정도 안녕, 빨래 걱정도 안녕~ 내 모든 걱정을 빨아들이는 제습기를 산 셈이다. 원룸 특성상 집에 바람이 잘 안 불고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습기는 자취 필수템, 작은 제습기라도 꼭 사기를 추천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소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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