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주류박람회 입장권, 만이천 원
“술 좋아하니?”
안지는 오래 되었지만 그리 친하진 않은 친구의 뜬금없는 메시지였다. 술? 대학생 시절부터 내 별명이 ‘술기’ 임을 모르는 것인가 이 친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당연히 좋아하지! 하고 답장했다.
“서울 국제 주류 박람회 같이 갈래?”
주류 박람회? 고건 또 뭐란 말인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행사 이름에 바로 초록 창을 켰다. 검색해보니 매년 코엑스에서 열리는 행사로, 지역 전통주들을 알리는 부스나 아직 한국에 수입되지 않는 술들이 수입사를 구하러 부스를 열고 진행하는 박람회라고 했다. 여기 입장권만 사면 들어가서 모든 부스에서 술을 시음해볼 수 있어. 친구의 덧붙인 말에 나는 당장 오케이를 외쳤더랬다.
입장권이 가격이 꽤 나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걸, 만 이천 원밖에 하지 않았다. 정가는 만 오천 원인데 당시 얼리버드 할인을 하고 있었다. 전국, 세계 각지에서 온 술을 맛볼 수 있다는데 이 정도면 너무너무 저렴한 가격이었다. 당장 2매를 구입하고 박람회가 열린다는 6월만을 기다렸다.
사람들 없는 날 가서 많이 먹고 오겠다는 일념으로 휴가를 쓰고 아침 일찍부터 금요일에 코엑스로 향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휑한 풍경에 조금 당황했지만,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다 보니 오히려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감귤술, 이름만 들어봤던 진도홍주, 러쉬 입욕제를 푼 것처럼 오묘한 펄이 돌아다니는 칵테일, 고흐가 즐겨먹었다는 압생트, 정말 술 맛이 하나도 안 나던 갖가지 과일 맛 맥주, 도수가 양주 수준인데 하나도 쓰지 않았던 청량한 명량, 부스를 지키는 아저씨 입담이 너무 좋아 세 잔을 줄줄이 들이켰던 초록색 리큐르까지.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야말로 ‘천국’인 곳이었다.
고작 만 이천 원으로 이 모든 술을 맛볼 수 있다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박람회 당일, 생활비 통장에 남은 돈이 3만원이라 술을 한 병도 사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것. 아쉬운 점이면서 동시에 다행이기도 하다. 통장에 돈이 있었다면 아마 술사는 데 돈을 다 써버렸을 것 같다. 내년엔 딱 십 만원만 들고 와서 두 병만 사가야지.
이젠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생소한 술들, 맛있는 술들.
기다려, 이번엔 꼭 우리 집으로 데려와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