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마왕 Nov 15. 2019

크로스핏, 가장 완벽한 운동

크로스핏 3개월 회원권

'아끼다 똥 된다.' 요즘 내가 꽂혀 있는 속담(?)이다. 사실 나는 지독한 짠돌이였다. 한겨울에도 로션을 찔끔찔끔 아껴 쓰다가 어느새 해가 바뀌어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사람을 대하는 마음마저도 아끼고 아끼다 관계가 흐지부지된 적도 많다. 그제서야 문득 어른들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아끼다 똥 된다.


그래서 이제는 로션도, 마음도, 돈도 웬만하면 아끼지 않기로 했다. 그리하여 이렇게 아끼지 않게 된 삶을 기록으로 남긴다.


우선 한 가지 고백부터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도 고등학교 체육복을 입고 운동을 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3만 원 주고 산 초록색 체육복이다. 아버지와 등산을 갈 때도 이 체육복을 입었다. 정상에 올랐을 때 한 아주머니에게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아유, 학생이 한창 공부할 땐데 아빠랑 산에도 오고 기특하네.”


‘‘대’학생입니다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영광입니다.’라고 대답할 뻔 했지만 간신히 입을 틀어막았다. 딱히 이런 얘기를 들으려고 체육복을 입은 건 아니었지만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체육복은 헬스를 다닐 때도 함께였다. 한 달에 5천 원밖에 안 하는 운동복 대여비가 아까워서 그랬다. 이 정도면 내가 헬스비도 얼마나 아꼈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나의 헬스비 마지노선은 한 달에 1만 원 대였다. 서울에서 장기 등록 없이 이 정도 가격으로 운영되는 헬스장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시설은 헬스클럽 계의 문화재 급이었다. 허름한 헬스장에 회원들과 옹기종기 모여 벤치프레스를 하기도 했고 다 뜯어진 바닥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스쿼트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운동 자체를 즐겼으니 시설이 전혀 아쉽진 않았다. 하지만 아끼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로 한 이상, 취미 활동에도 당당히 투자하기로 했다. 가급적 ‘비싼’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운동이란 바로 ‘크로스핏’이다.

사실 내가 크로스핏을 처음 알게 된 건 아직 짠돌이였던 대학생 때다. 당시 살고 있던 집 근처에 크로스핏 센터가 생겼는데 어떤 운동인지 궁금해 슬쩍 찾아가본 적이 있다.


슬금슬금 문을 열고 들어가 회원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몰래 지켜봤다. 그들은 괴성을 지르며 원판이 가득 껴 있는 바벨을 번쩍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집어던지기까지 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크로스핏은 동작이 힘들면 역도 선수들처럼 바벨을 바닥에 집어던진다.) 회원 분들을 보며 내심 겁도 났다. 내가 있을 곳이 못 된다는 생각에 다시 밖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상담 도와드릴까요?”


한 코치님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나처럼 몰래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은지 그분은 신속하고 자연스럽게 나를 상담 테이블로 안내했다.


크로스핏은 가장 완벽한 운동입니다.

그분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크로스핏을 설명하셨다.


하지만 그때 나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테이블에 놓인 가격표를 보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1개월에 25만 원, 할인을 해도 3개월 65만 원이었다. 나는 아이쇼핑하다 백화점 점원에게 붙잡힌 것 마냥 방실방실 웃기만 하다가 간신히 센터를 빠져나왔다.


그랬던 내가 과거의 나를 비웃으며 3개월치 회원권을 끊고 말았다. 마침 때는 바야흐로 새해 첫 달이었다. 아끼지 않기로 결심한 마음을 실천하기에 딱 좋은 시기였다. 지금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크로스핏 센터를 찾아가 일일 체험을 해본 뒤 거침없이 결제했다. 내가 사랑을 아끼지 않는 여자친구도 함께였다. 사실 새해 다짐 이벤트로 할인이 대폭 들어갔기에 망정이지, 대학생 때 찾아갔던 센터와 동일한 가격이었다면 꽤나 망설일 뻔했다. 비교적 저렴하게 회원권을 구매하긴 했어도 2인 3개월 권을 한 방에 긁었기 때문일까. 코치님의 수업 지도가 톨씨 하나 빼놓지 않고 귓속에 쏙쏙 들어왔다. (학교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할 걸!)


크로스핏이란 어떤 운동이냐 하면 한마디로 ‘Cross + Fitness’이다. 음악에는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가 있듯 운동에도 다양한 종목을 결합한 크로스핏이 있다. 무거운 중량을 다루는 역도 스킬을 기반으로 웨이트 트레이닝, 기계체조, 육상 등 여러 운동을 섞은 것이다.


크로스핏은 몸의 여러 근육을 골고루 발달시킬 뿐만 아니라 유산소, 근력, 협응력, 민첩성, 유연성 등등 육체 능력을 균형 있게 단련시킨다.


크로스핏은 보통 5명~10명씩 단체 수업으로 1시간씩 진행되는데 매일 매일 프로그램이 바뀐다. 바로 여기에 크로스핏의 매력이 숨어 있다. 크로스핏의 프로그램은 3~4개의 동작들을 정해진 개수 또는 시간 안에 수행하도록 짜여 있다. 이를 WOD(Workout Of the Day)라고 부른다. 코치의 지도 아래 회원들은 매일 새로운 동작을 배우고, 각자의 신체 능력에 맞게 WOD의 난이도를 조절하여 기록을 경쟁하게 된다. 또한 덤벨, 바벨, 캐틀벨, 철봉, 밧줄, 메디신볼 등등. 수많은 운동 기구를 활용한 WOD를 배우다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바로 이러한 매력 덕분에 운동이 낯선 회원들도 작심삼일 하지 않고 꾸준히 재미있게 운동을 다닐 수 있다.


일일 체험에서부터 크로스핏의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워밍업을 하며 부담 없이 땀도 빼보고 그 유명한 로잉머신도 타봤다. <무한도전> 조정 특집에서 멤버들이 탔던 그 운동기구였다. 코치님께 직접 코칭을 받으며 운동을 배워보니 내가 굉장히 소중한 사람인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일일 체험을 개운하게 마친 뒤에는 여자친구와 통닭을 먹었다. 그냥 통닭이 아니라 한방 약재와 함께 구운 전기 통구이다. 간만에 땀을 흘렸으니 먹는 것도 신경 써야 한다. 100만 원에 가까운 지출을 해서 그런지 통닭 2만 원은 돈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갑은 가벼워졌어도 마음만은 든든했다. 정말 소중한 순간에는 아끼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하루였다. 값이 나갈수록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크로스핏은 정말 완벽한 운동이다!


하지만 이때까진 몰랐다. 일일 체험은 그저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다음날, 첫 운동이 시작되었다. 군대 PT보다 빡센 듯한 WOD와 난생 처음 겪어보는 근육통이 우릴 반겼다. 여자친구의 초점 없는 동공은 ‘왜 날 이런 곳에 데려왔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달링…


숨이 끊어지고 토가 나올 듯 어마어마한 운동량에 ‘내가 왜 크로스핏 등록했지?’ 후회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크로스핏이 정말 완벽한 운동 맞지요? 코치님께 무언의 눈빛을 뿅뿅 보냈지만, 그는 회원들의 고통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구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