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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만 Oct 28. 2022

아빠의 퇴근길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아빠의 일상이 바쁘다. 아빠는 세종에서 신탄진까지 운전해서 출근한 후, 다시 충북 음성으로 이동한다. 퇴근 때도 마찬가지로 충북 음성에서 신탄진으로 이동한 후에 세종까지 운전해서 돌아온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해가 진 후 집에 도착하는 아빠의 업무 강도는 환갑이 넘은 사람이 감당하기에 벅차 보인다. 요즘의 아빠는 항상 통화를 끊기 전에 같은 말을 반복하신다.  


“아들아, 사기업은 다니지 마라."


  힘든 기색을 보인 적이 없던 아빠가 언젠가부터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식들 앞에서 항상 강한 모습만을 보이던 사람이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은 서글프다. 이제 아빠는 노쇠했고,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가 왔다. 노쇠한 인간의 자리를 건장한 젊은이가 대체하는 일은 자연스러우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아빠가 노인이 되었다는 그 사실 말이다.


  고된 노동을 버티는 이유는 단 하나, 가장이라는 의무 때문이다. 사람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밥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다는 단순 명료한 사실 때문에 아빠는 30년이라는 시간을 견뎠다. 불합리의 굴레를 감당해야 하는 당신의 의무를 나는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당신이 참담한 기분일 때, 나는 당신이 어느 정도로 좌절감을 느끼는지 헤아리지 못한다.  당신은 어떠한 마음으로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럼에도 당신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웃음을 지었나. 당신은 어떠한 마음으로 고통을 숨기는가.


  당신은 모욕을 견뎌야 하는 그 장소에 있어야 했다. 낙담했던 바로 그곳으로 다음 날 아침까지 도착해야 하는 기분을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장소를 벗어나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 나이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한 직장을 떠난다는 사실이 어떤 느낌인지 난 짐작할 수 없다. 좋은 점도 있고 섭섭한 점도 있겠지만, 익숙한 공간을 떠나는 아빠의 기분이 홀가분했으면 한다.


  아빠는 퇴근길 차 안에서 유튜브를 라디오처럼 틀어 놓으신다. 오래된 휴대폰이 재생하는 영상은 다음 영상으로 넘어갈 때 잠깐의 공백이 생긴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무음(無音)은 차 안을 가득 채운다. 난 몇 번이고 반복된 침묵 속에 놓인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는 떨어진 섬처럼, 홀로 차 안에서 도로 위를 표류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죽음 같은 적막과 침묵을 아빠는 너무 오랫동안 버텨왔다.


  이제 아빠의 출근길은 얼마 남지 않았다. 출근이 끝난 후에 아빠의 삶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더 이상 지금처럼 이른 시간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몇십 키로나 되는 출퇴근 거리를 오가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들처럼 주말을 보낼 수도 있겠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어떠한 모습이든, 아빠의 회사 생활을 대체하는 날들이 만족스럽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충분히 고생했다.


  아빠의 여생이 무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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