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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만 Oct 31. 2022

단풍 지는 가을을 바라보며


  며칠 동안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다. 가을 하늘은 동이 틀 무렵에 쪽빛이었다가, 낮에는 푸르고, 해가 질 때쯤에는 붉었다. 해가 저무는 방향에 위치한 산은 유난히도 흐릿했는데, 나무들의 집합체가 아닌 ‘산’이라는 단어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듯했다. 숲을 이루는 각각의 것들은 인식하기 어려웠다. 해가 질 즈음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빛이 거둬지는 방향으로 세상도 모습을 감추는 듯싶었다.


  단풍 물드는 모습을 보면 화양연화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가장 아름답다는 뜻은 이후의 시간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푸르게 피어난 생명력은 모두 소진되어 나뭇잎에게 남은 할 일은 추락뿐이다. 그 마지막 순서가 푸르던 시절을 뒤돌아보게 하는데, 그래서인지 단풍은 생기와 황량함의 틈새에 놓여 양면성을 띄는 듯하다.


  가끔은 단풍 물드는 모습이 소름 끼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저 붉은색은 생명을 갉아먹는 병처럼 잎을 물들인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한 번 시작한 이상 모든 이파리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퍼져나간다. 만개한 단풍은 며칠 찬란하다가 모조리 떨어진다. 녹색이 붉어지는 모습은 겨울이라는 병을 알리는 증상처럼 보인다. 찬란함은 한순간이지만 황량함은 길다.


  가을의 아련함은 시간의 덧없음을 상기시킨다. 가을 앞에 여름이 있고 겨울 뒤에 봄이 오듯이 모든 계절의 시작은 소멸과 맞닿아 있다. 계절은 생명의 순리에 따라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련의 과정에 놓여 있다. 그래서 모든 계절은 선형(線形)이면서 동시에 원형(圓形)이기도 하다.


  감정과 인연도 계절과 무관하지 않다. 그 어떤 감정의 형태도 항상성을 지니지 않아서 커지거나 작아지다가 끝내는 무덤덤하게 사그라든다. 인연 또한 그러해서 사랑이든 우정이든, 어떤 형태로 맺어졌든 간에 모든 관계를 끝까지 가져갈 수는 없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여서 그럴까, 어쩌면 삶이란 끝이 있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을 지나 겨울도 한 철이고, 다시 봄이 찾아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가을이 아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는 인연에 괴로워하는 이유는, 내가 속해있는 이 순간에 최선을 다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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