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 산 자가 엉키는 곳
평소에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가장 부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곳은 어디일까. 당장 떠오르는 곳으로 나는 장례식장을 꼽고 싶다. 상주를 맡은 자들은 아무리 성숙한 어른이어도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문상 온 손님들의 곡소리는 식장에 울려 퍼진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엄숙함을 넘어서 기진맥진하다. 장례식장의 부정적 기운은 두 번의 절정을 이루는데, 첫 째는 염을 할 때이고 둘 째는 화장 후 유골을 확인할 때이다. 생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확인할 때와 생전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을 때, 남은 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슬픔은 참아내기 어려운 것이다.
장례식은 죽은 사람을 구실로 산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이다. 장례식장에 가면 죽은 사람과 연결된 여러 관계를 만날 수 있다. 초등학교 동창부터 퇴사한 회사의 전 동료들까지, 이따금씩 장례식장은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과의 만남의 장소가 된다. 오랜만에 만난 인연들로부터 반가운 마음이 들 때, 장례식은 죽은 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잊혔던 인연의 기회를 부여하는 자리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 장례식장의 모습이 모순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상주들이 허망한 표정으로 고인의 영정사진을 바라볼 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육개장과 편육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근황을 확인한다. 그들의 표정은 자리의 엄숙함을 지키기 위해 자중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들뜬 감정 또한 분명해 보인다. 빈소를 지킨답시고 늦은 시간까지 화투를 치다가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과연 이곳이 죽은 자를 추모하는 곳인지 산 자들의 놀음판인지 분별하기가 어렵다.
화장이 끝난 유골을 함에 담고 납골당으로 내려갈 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개나리가 줄 지어 피어있었다. 납골당에서는 유골함이 안치되는 층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사람의 눈높이와 잘 맞으면서 볕이 잘 드는 곳이 '로열층'이고, 그렇지 못한 곳은 상대적으로 값이 싸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음이 났다. 당장 우리는 죽은 자를 달래는 의식을 치르고 왔는데 육신의 껍데기를 담는 유골함의 층수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당사자는 인간이 세운 규칙이 작용하지 않는 곳으로 가버렸는데, 남은 사람들은 철저하게 인간세의 규칙을 따른다. 그것이 죽은 자를 위함인지 장례를 주관하는 자들을 위함인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한 발짝 물러나 지켜만 보고 있었다.
장례식은 산 사람을 위한 행사인가, 죽은 사람을 위한 행사인가. 조문객들의 눈물이 식장을 채우는 모습은 애틋하다. 바쁜 일상을 쪼개서 몇 백 킬로미터를 달려온 사람의 의리와 인연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남은 이들이 조문의 값어치를 계산할 때 내 정신은 죽은 자의 세계로부터 현실로 되돌아온다. 음료수를 몇 병 마시고 편육을 몇 조각 먹고... 가격표 음식 이름 옆에는 바를 정(正) 자가 가득하다. 한쪽에서는 돈통을 열고 장부와 봉투의 이름을 확인하고 봉투에 숫자를 기입하며 조의금을 계산한다. 죽은 자의 세계라고 아름다울 것 없고 산 자의 세계라고 더러울 것이 없지만, 장례식장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규칙이 뒤엉켜 있어서 혼란스럽다. 사람은 각자가 속한 세계의 규칙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장례식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