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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만 Jan 04. 2023

폭력의 굴레

환경과 유전 (1)



  우리 동네에서 가정 폭력은 빈번한 일이었다. 폭력이 일어나는 가정은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술에 취한 남자가 아내와 말다툼을 하다가 분을 못 이겨 손찌검을 하고, 그런 일이 한계에 다다르면 끝내 갈라섰다. 이혼이 술을 더 마시면 마셨지 줄일 이유는 되지 못했으므로 이혼 후에 남자는 더욱 자주 마셨다. 손찌검은 때때로 자식에게까지 미쳤다. 몇 아이들이 어제와 달리 눈에 띄게 의기소침하거나 몸에 멍이 든 상태로 등교했다. 집이 안식처가 되지 못한 애들은 밖을 떠돌 수밖에 없었다.


  집이 머무를 곳이 되지 못한다고 해서 학교가 머무를만한 곳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들은 학교폭력의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이기도 했다.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은 나름대로 무리를 꾸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라도 즐거워했지만 피해자들은 그러지 못했다. 학교에서조차 마음 편히 있지 못한 몇몇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들은 종종 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알 수 없었다. 학교를 무단 결근하는 학생은 성실하지 않은 학생이므로, 교사들도 그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평범한 아이들도 그런 아이들을 반기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 학교에서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말하면 부모는 내 자녀가 나쁜 물이 들지 않도록 그런 아이들과 놀지 못하도록 단속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이들도 그런 애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폭력적인 가정은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으므로 학원이나 과외를 보내지 못했다. 학교가 끝나고 잠에 들기 전까지의 빈 시간에, 어쩌다 생긴 몇 천 원으로 피시방에 가거나 으슥한 곳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려줄 사람은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얼핏 들려오는 소문으로 누구는 다른 학교에 가서도 폭력에 시달렸고, 또 다른 누구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성인이 된 소식으로 누구는 스무 살 되자마자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아저씨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누구는 유흥을 즐기는데, 연락이 드문한 사람에게 돈을 꾸고 잠적하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누구도 그런 가정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런 가정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가정폭력 문제는 꾸준하게 발생한다. 그들의 집안 사정과 폭력의 양상은 비슷하고, 대부분의 사태는 미성년자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급류에 휩쓸리면 몸을 가누지 못하듯이 불가항력적인 흐름은 개인의 의지와 무관한 결과로 이끌고는 한다. 내가 저런 환경에서 성장한다면 나 또한 엇나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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