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생일 축하한다는 말에 이질감을 느낀다. 우리나라는 나이에 따라 요구되는 행동가지 및 사회적 지위가 분명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곳이다. 스물 후반에서 서른쯤 되었으면 괜찮은 직장에 취직하고 모아둔 돈도 얼마쯤 있어야 하며, 그 이상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직급에 어울리는 자동차, 집 등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스물다섯을 반 오십, 서른을 반육십이라고 부르며 늙음에 대한 잣대가 엄격한 나라에서 왜 나이를 더 먹는 그 날을 축하하는 걸까? 나이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축하가 아닌 위로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나이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배재하고 보아도 내게 생일은 기쁜 날이 되지 못한다. 사회적으로는 일 년을 한 나이로 살다가 생일 당일에 1살을 더 먹게 되지만 실제 육체는 그렇지 않고 매일 조금씩 노화한다. 그렇기에 내게 생일은 차곡차곡 쌓인 365일 치의 노화를 체감하는 하루다. 어렸을 적에 구몬 숙제를 조금씩 밀리다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것처럼, 생일은 일 년 전부터 지금까지 적립된 불성실이 얼마나 쌓였는지 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게 생일은 어떤 식으로도 좋은 날이 되지 못하는데, 딱 하나 장점이 있다면 소원한 관계의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을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애매한 사이라도 생일은 그 사람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구실이 되어준다. 그런 면에서 생일선물은 여러 의미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함께 늙어가는 처지에 대한 위로일 수도, 그리 친하지 않은 관계를 개선시켜 줄 안부일 수도 있고, 진심으로 함께해 줘서 고맙다는 표시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