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부정하기보단, 받아들이고 해소하는 쪽으로
나는 참, 쓸데없이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걱정을 만들어내는 사람에 가깝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상상하고, 그 상상이 또 다른 걱정을 낳고, 그 걱정이 하루의 기분을 좌우한다.
남들은 그냥 지나가는 일에도 나는 왜 그런 걸까? 별일 아닌 것에도 마음이 먼저 앞서 달려가 최악의 장면을 펼쳐 놓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또 조금 마음을 놓기를 반복한다.
건강염려증은 물론이고, 사소하게는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돌아보고, 보낸 메시지의 말투가 차갑진 않았는지 다시 읽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한다.
걱정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하다. 책임감이 조금 과하고, 타인의 감정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가능하면 모든 상황을 미리 대비해 두고 싶어 한다.
아주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걱정을 할까.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서일까,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지나치게 커서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걱정은 대부분 현실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 자란다는 것.
그래서 요즘은 걱정을 머릿속에만 두지 않기로 했다. 대신 밖으로 꺼내 보기로 했다. 이렇게 글로 써 내려가면 신기하게도 막연했던 불안이 문장 속에서 크기를 잃는다. 정체를 알 수 없던 감정이 ‘생각보다 별것 아니었네’ 하는 얼굴을 하고 앉아 있다.
완전하게 해소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다. 어쩌면 글쓰기는 나만의 걱정 퇴치법인지도 모르겠다. 도망치지 않고 바라보는 것, 흐릿한 불안을 또렷한 언어로 붙잡아 두는 것.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걱정에 끌려다니지는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쓰고 있다.
글로 적어보는 것 외에 다른 방법도 해보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살지 않는 것.
걱정 많은 사람들은 내일과 다음 달, 심지어 몇 년 뒤까지 미리 살아버리는 것 같다. 하지만 삶은 늘 현재에서만 흐른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을 오늘의 감정으로 당겨 쓰지 않기를 연습해보고 있다.
“그 일이 진짜 일어나면 그때 고민하자” 이 한 문장을 마음속에서 자주 꺼내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하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걱정을 줄이지 못하는 날도 있다. 또 같은 이유로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이 성향 덕분에 나는 더 신중해졌고,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으며, 삶을 쉽게 대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걱정은 나의 약점이 아니라 어쩌면 삶을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걱정은 아마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끌려다니지는 않으려고 한다. 불안이 올라오는 날에도 나는 여전히 하루를 살아낼 것이고,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별일 없이 지나갈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너무 앞서가지는 말자. 아직 오지 않은 감정들까지 미리 살아낼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