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점점 단단해지고 있는 걸까, 무뎌지고 있는 걸까

감정 조절

by max

감정이 한층 차분해졌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전보다 덜 예민해진 건 분명 좋은 일인 것 같은데, 한편으론 감정 소모에 지친 내가 스스로를 무디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예전의 나는 작은 말에도 오래 흔들렸다. 별 뜻 없이 던진 한마디에도 의미를 부여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그 말엔 다른 뜻이 있었던 걸까.’


그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면 잠은 쉽게 달아났고, 밤은 늘 길어졌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조금 다르다. 웬만한 말에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려 한다. 회사에서 애매한 지시가 내려와도 예전처럼 분노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대신 한 번 더 묻고,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인다. 감정을 곱씹는 대신, 정리하려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성숙일까, 아니면 포기일까.


예전처럼 사람에게 큰 기대를 두지 않게 되었고, 모든 관계를 오래 붙들고 있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피로감은 확실히 줄었다. 쉽게 무너질 일도, 크게 동요할 일도 없는 점이 편하다.


누군가의 평가에 하루 기분이 좌우되지 않고, 일의 결과가 내 존재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나는 분명 예전보다 강해졌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은 이런 생각이 스친다.


상처를 덜 받는 대신 기쁨도 덜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예전에는 작은 칭찬 하나에도 하루가 환해졌다. 좋았다. 좋아하는 사람의 연락 하나에 설렜고, 어떤 약속은 며칠 전부터 기다려졌다.


요즘은 설렘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감정의 진폭이 줄어들었다. 크게 아프지 않는 대신, 크게 뛰지도 않는다.

나는 단단해진 걸까. 아니면 조금 무뎌진 걸까. 어쩌면 단단함과 무뎌짐은 애초에 닮은 결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그렇게 어려웠다. 죽어라 해도 되지 않던 일이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해결해 주다니...


어른이 된다는 건 강해지는 일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감정은 흘려보내고, 붙잡지 않아도 되는 관계는 놓아주는 것.


그렇지만 나는 아직 예전의 나를 완전히 놓지 못했다. 어느 날은 여전히 수많은 감정이들이 잔뜩 밀려오는 날들이 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또다시 밤이 길어지기도 한다.


다만 이제는 안다. 그 마음 그대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는 것을.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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