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바운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자.' 내가 몇 년간 가져왔던 좌우명이다. 어떤 계기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좌우명으로 삼을 당시엔 정말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난다. 문제는 내가 이 멋진 좌우명을 실천하려고 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단 사실이다. 잠깐 반짝하고 시도했다가 다시 일상에 치여 시들해지는 일이 반복되었고, 결국 어차피 꾸준히 하지 않을 것을 아니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좌우명은 '늘 옆에 두고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라던데, 나에게 좌우명은 그저 자기소개할 때 한 번 언급하는 유명무실한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 좌우명을 꼭 실천할 필요성을 느낀 것은 군대에 와서였다. 장병 인권 존중이라느니 군 문화 개선이라느니 말이 많지만, 군대에서 군인들은 여전히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부품' 정도의 취급을 받는다. 어차피 1년 반 동안은 도망가지도 못하고 전역할 날만 기다리는 신세이니, 전문성 있는 역할은 거의 하지 못하고 그저 거대한 기계의 한 부품처럼 시키면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일을 해야 했다.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몰라도, 방법이 매우 비효율적이어도 말이다. 이렇게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던 도중 어느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사람은 이런 대우를 받는구나.', '다른 누군가가 날 존중하고 배려해주길 바란다면 먼저 내가 가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하지만 필요성만 체감했을 뿐, 아무도 방법을 가르쳐준 적이 없기에(혹은 가르쳐줬더라도 내가 주의 깊게 듣지 않았기에) 계속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나는 읽을 만한 책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책을 발견했다. 노란색, 검은색 배경의 표지에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가진 분이 강연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책 표지의 한 문구였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한다면 지금까지 얻어왔던 것도 놓치게 된다." 그 무렵 나는 절실했다. 안일하고 나태하게 살았던 지금까지의 나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로 살고 싶었다.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사람'에서 벗어나 아무도 쉽사리 나보다 잘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방식',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있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자명했다. 고민은 끝났다. 책을 집어 들고 그대로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말은 '어떤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힘과 역량을 키우자.'였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창조적, 파괴적 혁신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때이다.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이제는 현실이 되고 있고, 어제까지 맞았던 정보가 오늘은 틀리기도 한다. 하루하루가 불확실한 이런 상황에서는 미래를 예측하려는 사람보다는 당연히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일을 하나 하더라도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what'보다 'why'를 먼저 고민하고, 혼자 모든 걸 하려 하기보다는 타인과의 소통과 협업을 먼저 고려해보는 사람이야말로 여기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또 나열해보자면 열정과 끈기 가지고 꾸준히 하기, 모르는 건 솔직하게 인정하고 배우기, 매일매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습관 가지기 정도가 있겠다.
쉬운 길이 아닐 것이라 짐작은 하고 있었건만, 이렇게나 많은 행동들을 실천해야 하다니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황스럽다는 건 내가 지금 저 중 하나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없다는 뜻이니,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길도, 목적지도 모르고 헤매던 나에게 누군가가 지도를 던져준 느낌이었다. 이 맛에 독서하는 거 아닌가 싶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또 이제는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과도 경쟁해야 하는, 그야말로 경쟁이 경쟁을 낳는 시기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이 미래에 날 가치 있고 대체 불가능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를, 그래서 경쟁이란 장애물에서 자유롭기를, 오늘도 글을 쓰며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