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신,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남의 말은 죽어도 안 듣는다. 자신이 말하는 게 항상 옳고, 남의 말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고 싶어한다. 본인 관심사가 아닌 건 칼같이 끊으면서,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선 말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정말 속된 말로 꼴불견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사람들과는 절대 상종하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같이 지냈던 경우가 딱 두 번 있었다.
1) 기숙학원에서 만난, 모바일 게임 전문가 A
재수 때 나는 한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4인 1실이었는데, 거기 A가 있었다. 기숙학원의 경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교실에서 공부하는 데 보내기 때문에, 우리가 기숙사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은 저녁 점호 전 40분밖에 없었다. 그런데 A는 이 중 매일 15~20분을 본인 말고는 아무도 전혀 관심이 없는, 모바일 게임에 대해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내가 아예 관심을 주지 않자 상대적으로 거절을 못하는 성격인 B에게 말을 마구 '퍼부었고', 이 때문에 B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 게임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도 넌지시 드러냈고, 주제 전환도 여러 번 시도해봤지만 그 친구는 요지부동이었다. 뭔가 더 효과적인(혹은 충격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있는 차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A를 제외한 3명은 모두 리그오브레전드(줄여서 롤)란 게임을 했기에, 날짜를 정해 40분 동안 이 게임 이야기만 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유치한 방법이지만, 이때는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효과는 확실했다. 이야기한지 10분만에 A의 입에서 "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지금이 기회였다. A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네가 롤을 모르듯이, 우리도 네가 하는 모바일 게임이 뭔지 모르고, 사실 관심도 별로 없다. 앞으로 우리랑 대화할 때 모바일 게임 이야기는 조금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이 뒤로 확실히 게임 이야기하는 빈도가 줄었고, 얼마 후 그는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이 있는 방으로 옮겼다. 거기선 행복했을까...
2) 군대에서 만난, 만물의 원리를 알고 있는 C
군대에서 (무려)동기였던 C는 정말 대단한 화법을 구사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그건 원래 그렇게 해.", "그건 보통 이렇게 하던데?" 이런 식으로 거의 모든 문장에 '원래', '보통'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마치 세상 모든 걸 다 통달한 듯했다. 심지어는 두 단어를 한꺼번에 쓰는 경우도 종종 있어 정말 거슬렸다. 이뿐이면 좋았겠지만 그는 정말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자리도 옆옆자리에 일도 같이 해야 하다 보니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해보려 해도 내 말을 제대로 듣질 않으니 도저히 대화할 수가 없었고, 나중엔 말조차 섞기 싫은 지경에 이르렀다.
한 번은 도저히 못 참겠어서 세상 유치하게 "아 그래 너 잘났어~ 너가 하는 말이 다 맞아~"라고 한 적도 있다. 물론 나중에 사과하고 말할 때 이러이러한 점은 고쳐줬으면 좋겠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했지만... 뭐 본인이 세상 만물의 이치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데 나같이 어리석은 놈의 말 따위 귀에 들어올 리 없지 않겠는가. 결국 내가 정말 참고 또 참아서 더 이상의 큰 갈등은 없었다. 이 글 주제가 생각난 게 C 때문이니 어찌보면 고맙기도 하다.
나는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경청은 사실 쉽지 않다. 경청은 단순히 듣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1)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줘야 한다.
나에게는 사실 안 좋은 습관이 있다.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예측해 결론을 앞질러 말하는 것이다. 내 딴에는 상대의 말에 잘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었는데, 얼마 전 읽은 책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해서 많이 반성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판단하면 내 생각에 빠져 상대의 말에 집중하기 어렵다. 대신 상대의 말을 끝까지 귀담아 들어주는 모습을 보여주자. 발화자 입장에서는 이런 모습에 신뢰와 고마움을 가지게 되고, 이는 사회생활을 할 때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2) 적절한 질문을 던져 대화를 확장시킨다.
'똑똑한 사람들은 질문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질문은 중요하다. 핵심을 짚는 질문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발화자도 즐거울 뿐 아니라, 서로의 간극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대화를 더 즐겁고, 알찬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질문을 할 때는 '네, 아니오'처럼 단답으로 답할 수 있는 닫힌 질문보다는 대화 내용을 좀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열린 질문을 하자. "밥 먹었어?"보다는 "밥 어디서 뭐 먹었어?" 같은 질문이 좀 더 적합하다는 얘기다.
3)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맞장구, 고개 끄덕임, 눈 맞춤 등 적절한 반응을 해준다.
말을 듣는 동안 팔짱을 끼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반면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고, 눈을 마주치는 사람에게는 편안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이런 비언어적 표현 외에도 말을 들을 때 내가 추천하는 건 '백 트래킹'이다. 백 트래킹이란 상대방 말의 일부를 따라함으로써 말을 잘 듣고 있다는, 공감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A : 어제 민수랑 철수가 싸웠다는데, 알고 있었어?
B : 엥? 아니, 처음 들었어. 걔네 둘이 싸웠다고?
사람은 말을 할 때 자신의 말이 잘 전달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백 트래킹을 사용한다면 상대방에게 이야기가 잘 전달되었음을 알려줄 수 있고, 이는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
4) 상대방의 생각이 나와 다르더라도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사람은 각자 저마다의 경험과 배경이 있고, 그렇기에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다. 이럴 때 나의 논리를 상대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저런 생각도 할 수 있겠구나.'처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제발 '네 말은 틀리고, 내 말이 맞아.' 같은 경직된 자세는 취하지 않도록 하자.
이렇게 경청하는 자세로 대화하면 나의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방과의 유대감을 형성해 살아가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말을 잘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은데, 말을 잘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은 글을 읽어봐야 하듯이, '잘 듣지 않는' 사람은 절대 말하기를 잘할 수 없다. 그러니 남들 앞에서 말을 잘하고 싶다면 먼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 먼저 해보자. 대화의 기본은 누가 뭐라 해도 역시 경청이다.
마지막으로 '대화할 때 마음을 열게 하는 16가지 방법'을 공유하며, 이번 글은 여기서 마무리~
1) 상대방의 대각선 방향에 앉는 것이 좋다,
2)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지 말고 끝까지 귀를 기울여라.
3) 상대방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때때로 눈을 마주친다.
4)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예측해서 결론을 앞질러 말하지 않는다.
5)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비언어적 정보를 읽는다.
6)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방의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7)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중에 내 다음 말을 생각하지 않는다.
8) 적절한 빈도로 고개를 끄덕인다.
9) 얼굴 전체로 웃는다.
10) 긍정적인 호응을 보인다.
11) 몸을 약간 앞으로 내민다.
12) 팔이나 다리를 꼬지 않는다.
13) 상대방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14) 대화하면서 시계나 휴대전화를 보지 않는다.
15) 머리카락을 자꾸 만지지 않는다.
16) 상대방이 불평을 늘어놓을 때는 상대방 입장에 공감하면서 긍정의 대답이 돌아오는 질문만 한다.
(출처 : 책 :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