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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천 Aug 22. 2022

오랜만에, 인류애 충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살면서 에세이집을 읽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학생 때는 '에세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기도 했고, 접했던 책들은 주로 소설이나 청소년 권장 도서였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독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글을 쓰기 시작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그동안 너무나 무지했던 나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자기계발, 경제, 역사 관련 책 위주로 읽어나갔다. 새로운 지식을 쌓고, 정보를 얻어가는 과정은 즐거웠다.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면서 머릿속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깨달음을 통해 연결되면 너무나 행복했고, 몰입의 즐거움 역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역일이 다가오고,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마음 한 켠에 공허함이 느껴졌다. 자기계발서의 날카로운 책사 같은 촌철살인의 문체도 물론 좋지만, 때로는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따뜻한 위로도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였을까, 독서 모임에서 진행했던 도서 교환식에서  '따뜻한 문장으로 삶에 위로를 준다'라는 말에 주저 없이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에는 나를 울린 여러 구절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특히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들 위주로 발췌해보았다.


우리 어머니가 팔십 평생을 회고하며 자신 있게 못된 사람 만난 일 없다고 술회할 수 있듯이 세상엔 믿을 만한 게 훨씬 더 많다. 우리가 믿음에 대해 쉬 잊고 배신을 오래 기억하며 타인에게 풍기지 못해 하는 것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바탕이 결코 불신이 아니라 믿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24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개인주의와 이기심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작가는 일상의 바탕이 '믿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라는데, 난 은연중에 사람들이 올바른 행동을 하기를 '기대'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믿음에 맞게 행동해주었다. 그러니 무턱대고 불신하는 자세는 어쩌면 미련한 삶의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믿었던 것에게 배신당할 확률보다 불신했던 게 알고보니 믿을 만한 것이었을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계획된 시간을 예기치 않은 일에 빼앗길까 봐 인색하게 굴다 보니 거의 시계처럼 살려니 꿈이 용납되지 않는다. (중략) 시계처럼 산다면 제법 정확하고 신용 있는 사람 티가 나지만 시계가 별건가. 시계도 결국은 기계의 일종이거늘.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사람이 기계처럼 살아서 어쩌겠다는 걸까.
-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66


일상을 빡빡하게 채우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들이 있다. 조금만 시간이 비면 낭비하는 것 같아 불안하고, 결국 그 시간을 자기 계발로 꾸역꾸역 채운다. 나 역시 최근 다소 한가한 삶을 살면서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이 구절을 읽고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다. 때로는 시간을 비워놓고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기대감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광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도 말짱 헛것인 게,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인색하다. 넉넉하다는 게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이라면, 요새 부자는 늘어나는지 몰라도 넉넉한 사람은 자꾸만 줄어드는 것 같다.
-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91


우린 과거보다 훨씬 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생활의 여유와는 반대로 마음의 여유는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아마 한층 심화된 경쟁과 각박해진 사회 분위기 때문이겠지. '넉넉하다'라는 말을 제일 좋아하는 필자처럼, 나도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때로는 베풀면서 살아가야겠다.



한마디 말이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말의 토씨 하나만 바꿔도 세상이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손바닥의 앞과 뒤는 한 몸이요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뒤집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가장 먼 상대이기도 하다. 사고의 전환도 그와 같은 게 아닐까. 뒤집고 보면 이렇게 쉬운 걸 쉽지만, 뒤집기 전엔 구하는 게 멀기만 하다.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128


필자는 노래를 못한다는 생각에 하루종일 우울해하지만, 친구의 "너가 노래까지 잘하면 어떡하니."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잘하는 게 노래말고도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필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소한 약점에 대해 고민 또 고민한다. 하지만 이런 고민들은 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자신의 약점보다는 강점에,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에 집중해보자. 아마 나 자신이 좋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작가가 될까 말까 하던 4년 전의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다.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216


이 구절은 필자가 아직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전에 쓴 듯하다. 정상급 소설가인 박완서 님도 이런 때가 있었다니 위안이 되면서도, 역시 성공의 비결은 꾸준함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은 어렵겠지만, 하기로 마음먹은 일은 어떻게든 꾸준히 해야겠다. 낙수가 바위를 뚫고, 가랑비에 옷 젖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눈에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성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한테 미움받은 악인한테서도 연민할만한 인간성을 발굴해낼 수 있고, 만인이 추앙하여 마지않는 성인한테서도 인간적인 약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게 작가의 눈이다. 그리하여 악인과 성인, 빈자와 부자를 층하하지 않고 동시에 얼싸안을 수 있는 게 문학의 특권이자 자부심이다. 작가의 이런 보는 눈은 인간 개개인에게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나 제도를 보는 데도 결코 달라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236
 


세상엔 완전한 선도, 완전한 악도 없다. 이를 항상 마음에 새겨 내가, 혹은 남이 하는 행동을 이분법적인 잣대로 평가하지 않도록 해야갰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내가 일생 끌고 온 이 남루한 여행가방을 열 분이 주님이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서는 허세를 부릴 필요도 없고 눈가림도 안 통할 테니 도리어 걱정이 안 된다.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247
 


잃어버린 여행가방에 대한 고찰에서 사람의 죽음까지 연결되다니 역시 일류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이 구절을 읽고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나의 순수한 민낯을 보여줘야 할 때가 올 것이기에, 더더욱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살 줄만 알고 내일 죽을 줄 모르는 인간의 한계성이야말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만약 인간이 안 죽게 창조됐다고 가정하면 생명의 존엄성은 물론 인간으로 하여금 사는 보람을 느끼는 모든 창조적인 노력도 있을 필요가 없게 된다. (중략) 때로는 나에게 죽음도 희망이 되는 것은 희망이 없이는 살아 있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264


'끝'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나의 군생활도 오늘부로 마지막이다. 끝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희망도 있었고, 또 나중에 조금 더 잘 살아보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니 끝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자 희망 그 자체라고 느껴진다.


계절의 변화에 신선한 감동으로 반응하고,남자를 이해관계 없이 무분별하게 사랑하고 할 수 있는 앳된 시절을 어른들은 흔히 철이 없다고 걱정하려고 든다. 아아, 철없는 시절을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283-284


젊을 때는 많은 부분에서 처음이라 미숙하고, 그렇기에 다소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춘은 유한하고, 또 다시 오지 않기에 아름답다. 지금 내 나이면 청춘인 것 같은데, 한 번뿐인 청춘을 허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 일이 늘 그렇듯, 필자에게도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역무원에게 밀쳐져 비 오는 날 넘어지기도 하고, 배송을 잘못한 배달원에게 적반하장을 당하기도 하며, 아이와 남편을 먼저 여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같이 따사롭고 온화하다. 계층, 젠더, 연령 등 각종 갈등들이 부각되고점점 더 개인주의 사회로 접어드는 요즈음 이런 보석같은 글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이 책을 추천해 준 사람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읽을 당시 느꼈던 벅찬 감정들이 느껴진다. 그간 다소 멀리해왔던 믿음, 진실, 꿈, 동행, 그리고 사랑의 힘을 오랜만에 굳게 믿어보고 싶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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