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을 앞둔 소회
내일, 나는 1년 반의 군 생활을 끝내고 다시 사회로 돌아간다. 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훈련소 입소, 후반기 교육 3주, 강원도 화천에서의 1년 4개월. 낯선 곳으로 갈 때마다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또 군대에서의 무수한 부조리와 갈굼, 상명하복이라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 휴가 자른다고 협박하기 등 갖가지 수단들은 아무리 불합리한 명령이어도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 모든 걸 참고 또 참으면서 사회에서 정말 잘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난다.
앞에서는 안 좋은 말들만 늘어놨지만, 돌이켜보면 군생활이 꼭 해가 된 것만은 아니었다. 먼저 군생활 동안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면서 사회 생활 및 인간 관계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어느정도 확립할 수 있었다. 특히, '모든 사람이 나의 스승이다.'라는 말은 이제 나의 좌우명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 나는 괜찮은 사람을 보면 '저렇게도 해봐야겠다'며 그들의 긍정적인 측면을 따라하고, 별로인 사람을 보면 '저런 짓을 하면 별로구나.'며 그들의 부정적인 행동을 나는 하지 않으려고 의식하게 된다.
또 오히려 환경, 시설, 처우 등이 열악했기에 더 배운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복무했던 곳은 최전방이었을 뿐 아니라 시설까지 매우 열악했다. 물이 부족해 샤워, 세탁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30명이 넘는 인원이 모두 한 방에서 잤으며, 소위 팅커벨이라 불리는 나방 포함 잡다한 벌레들이나 쥐를 보는 것은 일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마저 기승을 부려 휴가도 나가지 못하고 6개월여를 부대에서만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은 결핍과 부족함을 느낄 때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군대에서 인간적인 처우를 받지 못한다 생각했기에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고, 독서 및 운동과 같은 자기계발에 눈을 뜰 수 있었다. 게다가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생각에 블로그에 한 줄, 두 줄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게 하나의 취미가 되었고, 어느덧 브런치 작가까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낸 경험은 후에도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
'끝'은 곧 새로운 것의 시작을 의미하기에, 이제는 사회에서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내가 멈춰 있던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주위의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같이 대학을 다니던 친구들은 어느덧 졸업 준비, 인턴 활동 등 저마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에 반해 재수에 군대까지 다녀왔고, 입대 전 대학 생활도 볼품없이 한 나는 그들에 비해 많이 뒤쳐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군 생활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의 양 자체는 상당했지만, 그것이 나에게 오래 남거나 나 자신을 깎아내릴 정도로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집단이 문제이지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 스트레스에는 '끝'이라는 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전역하면 다 해결되니 괜한 일 만들지 말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다 보면 모욕적이거나 부당한 일을 당했더라도 당시에만 기분이 나빴을 뿐, 몇 일 뒤면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겪어야 할 스트레스는 아마 평생 갈 것이다. 졸업을 하게 되면 취업 걱정, 취업을 하게 되면 결혼 걱정, 결혼하고 나면 노후 걱정.. 이런 식으로 고민과 스트레스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스트레스를 친구로 생각해라, 지금 힘든 것도 훗날 돌아보면 별 일 아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 속도가 다르니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다 등등.... 하지만 내가 직접 이런 문제들을 맞닥뜨렸을 때 아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그럼에도 누가 나한테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냐 묻는다면, 그냥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할 것 같다. 사실 우리가 고민하고 걱정하는 일들 중 대부분은 일어나지도 않는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고민하기보단 눈 앞의 일부터 최선을 다해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내 경험상 열심히 하다 보면 어딘가에서 좋은 기회가 반드시 열린다. 군대에 있던 지난 1년 반 동안은 내 의지가 나의 삶을 거의 바꾸지 못했지만, 이제는 내가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지금 인생의 변곡점에 서 있다. 과연 내 인생 곡선은 어디로 향할까? 비록 불확실하고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어떤 시련에도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 내일부터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