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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천 Apr 06. 2023

삶에는 내비게이션이 없다

불안감을 대하는 삶의 태도

  어렸을 때(어쩌면 20대 초반까지)는 크면 자연스레 무언가가 될 줄 알았다. 정해진 길을 따라 쭉 가다 보면 목적지가 자연스레 나타나는, 그야말로 순탄한 미래를 그렸었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자기소개서라는 글 몇 장으로 손쉽게 평가되고,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는 지금, 그런 환상은 버린 지 오래다.


  다른 친구들도 상황이 비슷한 것 같다. 만나면 화기애애하게 근황을 공유하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장래에 무얼 해야 할지가 주제가 된다. 어디서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살아야 할지, 인공 지능이 어떤 직업들을 대체할지, 심지어는 내 몸의 장기들을 인공 장기로 대체한다면 그건 과연 나인지 같은 철학적 이야기들까지 나온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나면 불안감 때문인지 분위기가 냉각되고, 급히 다른 주제로 분위기 전환을 하려 해도 쉽지가 않다.


  설상가상으로, 사회 상황도 썩 좋지 않아 보인다. 전례 없는 저출산, 폭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천정부지인 집값, 서민들 주머니 사정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르는 물가 등등... 요새 정말 상황이 안 좋은 건지, 아니면 내가 이런 뉴스들만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엔 어려워 보인다.


  우리네 삶에는 내비게이션이 없다. 길을 모르는 삶이라는 도로 위에서 우리는 방황한다. 직진과 후진, 좌회전과 우회전을 반복하며, 때로는 갈림길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도로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누군가가 대신 운전해 줄 수도, 길을 가르쳐 줄 수도 없다. 또 목적지가 주행 중에 바뀌는 일도 빈번하며, 그에 따라 가던 경로를 완전히 이탈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불안하다.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게 정말 최선인지 고민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감에도 과연 이것이 의미가 있을지, 훗날 그저 실패한 경험으로만 남지는 않을지 늘 의심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감은 오히려 개인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실패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결정적인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면 지금 내가 왜 불안한지 따져 보고,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 본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 우리를 괴롭히는 불안감은 대부분 실체가 없는,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가정에 근거함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확인하면 불안감은 거의 사라지지만, 그럼에도 감정이 요동칠 경우에는 산책이나 운동으로 머리를 비우거나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한다.


  유명 심리학자인 켈리 맥고니걸은 그녀의 테드 강연, 'How to make stress your friend'(스트레스를 친구로 만드는 방법)에서 이렇게 말한다. "8년간 3만 명을 조사한 연구에서 밝혀진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8년 뒤에도 생존해 있을 확률이 높았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스트레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불안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와 공존할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현재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 한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한다. 그러니 앞으로 불안감이 엄습할 때면 이 말을 기억하자. '날 죽이지 못하는 것들은 날 더욱 강하게 만든다.'(What doesn't kill me makes me stronger.) 불안감이 친구처럼 느껴지는 그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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