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스 Max Jan 20. 2019

자본의 물길에서 임팩트로 노젓기

2019년, 양적 실험대에 오른 한국 임팩트 투자

한국의 임팩트 투자가 꿈틀대고 있다. 2018년, 작년 한 해에 조성된 임팩트 펀드의 규모는 약 1,750억원에 이른다. 이 금액은 지난 몇 년간 진행된 임팩트 투자를 모두 합친 금액을 훨씬 넘는 액수다. 이 양적성장의 배경은 단연 정부의 지원이다. 2018년 이전에도 정부는 고용노동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을 통해 2011년부터 총 290억원의 사회적기업 모태펀드를 조성해왔지만, 정부가 한 해에 이렇게 대규모의 임팩트 펀드를 조성한 건 처음이다. 임팩트 투자에 지속성을 더해줄 도매펀드의 출범도 예정되어 있다. 정부는 이른바 사회가치연대기금을 5년 간 3,000억원 규모로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민간 금융기관들이 주요 재원을 출자하고 정부가 매칭하는 방식으로 영국의 BSC 를 모델로 하고 있으며, 임팩트 투자사들을 위한 도매펀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도매펀드라 함은 펀드들에게 자금을 공급해주는 펀드를 말한다.)

 

역대 최고치를 보여주는 이 숫자들이 갖는 의미는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임팩트 투자 생태계가 어떤 규모나 지형 유지되고 성장해왔는지를 돌아보면 명확해진다. 국내에는 임팩트 투자에 대한 연구나 통계가 거의 없었기에 그 양상을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나마 존재하는 것이 가톨릭대학 라준영 교수팀이 연구한 '사회영향투자의 동향과 전망' 보고서다. 이 연구는 2015년 12월을 기준으로 국내의 임팩트 투자사 10곳(D3쥬빌리, MYSC, Sopoong, SK행복나눔재단, HGI,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크레비스파트너스, (재)한국사회투자, 미래에셋, 포스코기술투자)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설문을 진행했다. 놀랍게도, 이들 10개 기관이 관리하고 있는 자산 및 투자 규모는 약 540억원(2015년 12월 기준), 서울시가 출자하고, 한국사회투자기금이 전액 대출(Debt)로 집행한 359억 원을 제외하면 전체 규모는 180억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180억 중에는 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 전용 모태펀드 40억이 포함되어 있다하니, 민간 투자의 규모는 140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이 연구에 포함되지 않은 임팩트 투자도 상당수 있다. 한국 임팩트 투자의 역사는 길게 잡아도 10년 밖에 되지 않았고,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지분투자(Equity)는 물론이고, 지원금(Grant)부터 대출(Debt), 채권(Bonds)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임팩트 투자에 대한 개념 정립이나 조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연구에 배제된 비영리조직들의 임팩트 투자도 상당 부분 누락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인 Grant를 주요 투자 수단으로 사용하는 C-program이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2015년 라준영 교수님의 연구에서 이야기하는 국내 임팩트 투자의 현황은 최소 규모로 해석해야 한다. 


2018년, 정부 주도로 결성된 한국 임팩트 펀드의 현황


이 펀드의 운용사들 중에는 기존에는 임팩트 투자를 해오지 않던 투자 및 자산운용사들도 상당수다. 일반 투자사들도 임팩트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무적이다. 이는 임팩트를 창출하는 투자는 소비자 및 시장의 요구이자 사회적 당면과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가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일맥상통한다. 


정부가 2018년 한 해에만 큰 규모의 임팩트 펀드를 조성할 수 있었던 것 배경에는 지난 10년 여간 꾸준히 임팩트 투자의 가능성과 가치를 증명해온 곳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몸 담고 있는 sopoong를 비롯해 D3쥬빌리는 지금까지 각각 약 40여 곳과 30여 곳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 소셜벤처에 투자해왔다. 2016년에 설립된 옐로우독만해도 3년 여가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자체 자금 및 정부 펀드로 이미 4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집행했다. 이번에 대규모의 임팩트 펀드를 조성할 곳들도 자체 자금 혹은 정부의 소규모 펀드를 바탕으로 각각 10여 곳 내외의 투자를 해왔다. 


1호 펀드의 상징성과 수익률

사실 1,752억원는 일반 투자시장과 비교하면 적은 숫자다. 하지만, 임팩트 투자의 첫 단추를 꿰기에는 충분하다. 작년에 조성된 이 펀드들은 평균 8년 동안 지속될테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하여 향후 3~4년 동안은 매년 최소 400억원 가량의 투자금이 임팩트 투자를 명목으로 집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선 라준영 교수팀의 연구에 기반하면, 기존에 임팩트 투자를 해오다 이번에 펀드를 조성하게 된 투자사들은 투자 자산이 평균 20억으로 소액/소규모 투자를 해오던 곳들이다. 그 이전까지 임팩트 투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이정도의 금액과 성과를 낸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지만, 이제는 규모화의 실험대에 올랐다. 


이들 임팩트 펀드 다수는 각 운용사의 입장에서 임팩트 1호 펀드다. 통상 운용사들에게는 1호 펀드가 가지는 상징성이 크다. 후속 펀드들의 벤치마크이자, 레퍼런스, 대표 선수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의 펀드들은 재무적 수익률과 사회적가치 사이에서 다소 재무적 수익률에 치우친 투자를 할 가능성이 높다. 쉽게 말하자면, 임팩트 펀드들의 수익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조건 회수가 되어야 한다. 최소 0%의 수익률을 내지 못하면 2호, 3호 펀드의 가능성은 희박해질 수 박에 없고, 자연스럽게 이들 펀드는 비즈니스 모델과 사회적 가치 모델이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는 모델에 투자하거나 기존 벤처들 중에서 사회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는, 어느 정도는 지속가능성과 회수가능성이 검증된 곳들에 투자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은 사회적경제 영역으로 통칭되는 사회적기업, 자활/재활기업, 마을기업 등에 이번 펀드 자금이 들어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팩트 펀드가 조성되면, 대출 일변도의 자금조달에서 지분 투자로 자금 조달방법이 더 다양해질 것이라 기대하던 여러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박탈감도 느끼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임팩트 투자는 이제서야 비로소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스스로 검증을 해내야 하는 시기라는 말이다. 이 검증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면, 더 많은 임팩트 투자사와 펀드가 조성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투자의 방법이 대출등으로 다양화되거나 투자 대상 역시도 수익률이 낮거나 마이너스지만 커다란 사회적가치 창출이 기대되는 곳들로 확장될 수 있으리라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자기언어화

임팩트 측정과 평가는 한국 임팩트 투자사들이 제대로 가보지 않은 길이다. 임팩트 투자는 흔히 '재무적 수익과 함께 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창출하는 것을 의도로 기업, 조직, 펀드에 행해지는 투자(by GIIN)'로 정의된다. 이에 더하여 긍정적인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측정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임팩트 투자로 인정받는다. 중기부와 금융위원회에서도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들 펀드에 대한 사회적가치 측정과 평가를 필수적 과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임팩트 투자사들은 아직 임팩트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경험이 짧다. 기존에 한국에 존재했던 임팩트 투자사들은 주로 씨드투자를 해왔다. 초기 단계의 소셜벤처들은 당장의 생존이 당면 과제인 경우가 많고, 아직 사업의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임팩트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이 무의미한 경우가 다수였다. 자연스럽게 측정보다는 임팩트 창출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설계와 초기 검증이 우선과제가 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에 조성된 투자 펀드들은 주로 Series A 단계의 팀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게 될 것이고, 이들 팀은 초기 검증을 넘어 확장 단계에 있기 때문에 임팩트 측정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클 것이다. 다행인 점은 SDGs등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들이 존재하고, 임팩트 투자사들 역시 이제는 임팩트를 중심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사들만의 철학이 반영된, 다양하고 차별적인 임팩트 측정과 평가에 대한 기준과 결과가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자기언어로 임팩트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임팩트 투자다. 다행히 시간은 있다. 


특히, 이번에 임팩트 펀드를 조성한 곳들 중 절반 가량은 기존에는 임팩트 투자를 해오지 않던, 재무적 수익률 중심의 투자사들이다. 이들은 기존 임팩트 투자사들에 비해 사회적 가치를 더 폭넓게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 대상도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벤처들 보다는 일반 벤처 중에서 사회적 가치가 있는 제품/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곳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임팩트 투자를 통해 벤처들이 스스로가 창출해내는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고 측정하도록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지난 몇 년간 임팩트 투자사들이 투자해온 사례를 보아도 스스로를 소셜벤처로 표방하지 않았지만, 임팩트 투자를 통해 사회적가치에 대한 명확한 지향을 갖게된 팀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일반 투자사들이 임팩트 투자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같다. 



소셜벤처의 취약한 저변

그런데 정작 투자할 만한 소셜벤처가 늘어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투자금이 풀렸고, 임팩트 투자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투자사들도 늘었다. 이 펀드들은 RCPS나 보통주로 투자될 것이고, Series A라운드를 메인으로 Pre-A와 일부 Series B라운드까지 커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정작 투자할만한 소셜벤처들이 드물다는 점이다. 극초기의 소셜벤처들을 발굴하고 투자/육성을 하고 있는 sopoong의 입장에서도 좋은 소셜벤처 팀을 찾고 투자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우리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곳들을 찾는 것 조차도 어렵다. 


자연계에서 보듯 생태계란, 피라미드 구조가 가장 안정적이다. 임팩트 투자 생태계가 효과적으로 투자를 지속하려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창업가들을 길러내고 이들이 아이디어를 초기 검증할 수 있도록 돕는 인큐베이터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소셜벤처의 저변이 취약해지면 자연스럽게 임팩트 투자의 저변도 취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처 생태계에서 보듯이 인큐베이터들의 경우 투입비용이 높은 반면에 회수까지 보통 5~7년이 걸리는 터라 충분한 자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sopoong를 비롯해 프라이머, 매쉬업앤젤스 등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며 성과를 내고 있는 씨드투자자/인큐베이터들이 주로 성공한 1세대 창업가들의 pay it forward에 기반해 운영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모델이 소셜벤처계나 임팩트 투자에 적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점이다. 소셜벤처, 사회적기업으로 성공한 창업가들이 탄생하고 이들이 성공으로 확보한 자본을 후배 사회적기업가들을 육성하는 데에 재투자하는 그림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육성을 지원할 것이고, 민간 재단, 대기업 등의 사회공헌 자금들이 속속 소셜벤처 육성에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 대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어디까지나 보조에 지나지 않는다. 임팩트 펀드가 규모있게 조성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생 소셜벤처들을 전문적으로 육성해내는 인큐베이터들이다. 저변의 확장없이는 임팩트 펀드를 만들어도 투자할 곳이 없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계속 나올 것이다.  




정부는 2019년, 임팩트 펀드의 출자액을 대폭 삭감했다. 결성 목표액이 모태와 성장금융 각각 200억원씩 총 400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2018년에 비하면 1/4에도 못미치는 금액이다. 이제 막 배를 띄우려는 시점에 물이 말라버리는 격이다. 정부 임팩트 투자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을 지향한다. 일자리, 환경, 에너지, 고령화 등 사회적 문제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에 새로운 혁신과 성장 동력에 임팩트 투자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임팩트 투자 역시 민간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지만 현재는 정부가 더 적극적인 마중물 역할을 해야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마중물은 초기 소셜벤처 창업팀을 발굴, 육성하는 곳부터 유입되어야 한다. 


얼마 전 사회적경제 분야의 선배와 민간에서 자본을 갖고 진행하는 실험이 매우 중요하고, 성수동의 임팩트 투자사들이 민간의 힘으로 의미있는 성과를 내길 바라고 있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누었다. 이 대화의 끝은 "물은 들어오는데 노한번 젓고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로 끝이 났다. 


올해에는 사회가치연대기금이 3,000억원 조성을 목표로 출범한다. 3,000억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충분한 돈도 아니다. 이 한 방으로 모든 것이 끝나서는 안된다. 올인(all-in)은 잃어봤자 '돈'이 걸려있는 도박에서나 통용되는 전략이다. 임팩트 투자에는 수많은 삶이 걸려있다. 이 자금이 충분한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운용구조와 전문적인 운용인력, 임팩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집행방법등이 결정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임팩트 투자계는 이렇게 큰 물이 들어오는 걸 경험해본 적도 없다. 부디 이번 실험이 올인이 아닌 다음 실험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의미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남아는 임팩트 중#2. 임팩트 투자의 확산과 과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