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하게 쓸 바에는 안 쓰는 게 나을 수도
시간에 쫓겨가며 글을 쓰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 답은 글이 알고 있다.
공모전에는 당연하게 마감일이 있다.
나만의 경험인지는 몰라도, 어느 공모전이든 마감일은 늘 내가 그걸 본 날로부터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즉, 이른 시일 내에 공모전에서 요구하는 사항, 특히 원고 매수를 맞춰야 했다.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마감일을 지켜서 공모전에 접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대부분은 ‘도저히 안 되겠다.’ 하고 포기해버렸지만, 의외로 무사히 접수한 공모전도 꽤 됐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중도 포기의 경우에는 당연히 떨어지고, 접수한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퇴근하고 나서 밤늦게까지 원고를 쓰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자 ‘차라리 그냥 포기하고 잠이나 푹 잘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스스로 알고 있었던 실패 원인
마감일에 쫓겨 원고를 쓰면서도 나는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밥도 급하게 먹으면 얹히기 마련인데, 글이라고 다를까.
그럼에도 글을 계속 썼던 건 잘 될 것 같다는 ‘김칫국’이 실패에 대한 생각을 압도해버렸기 때문이다. 김칫국을 마셔가며 공모전 조건을 맞춰 접수해놓고서 떨어진 후에야 나의 원고가 좋지 않았다는 걸 깨달을 때가 많았다.
마감일만 지켰을 뿐 아무것도 신경 쓰지 못했다.
시간에 쫓기니 원고에 대한 상황 파악은 뒷전이었다. 보통은 원고를 쓰다 말고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며 미흡한 부분을 찾아내고 수정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건너뛰었다. 그래도 양심상 오탈자는 찾아냈던 것 같다.
또한, 원고 매수를 채우는 데 급급하다 보니 필요 없는 곁다리들이 늘어나고, 앞에서 했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굳이 또 꺼내기도 했다. 매수가 딱 맞다 보니 태가 별로 좋지 않아도 가지치기를 할 수 없었다. 가지를 쳐내면 원고가 줄어드니까. 작가에게는 넉넉하게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하면서 정작 나는 그렇게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공모전의 요구 사항에 원고를 맞추다 보니 어느샌가 글이 산을 타고 엉뚱한 쪽으로 가버리는 일도 있었다. 예를 들면, 사극으로 써놓았던 극본을 현대극으로 바꾼 일이 있었는데, 현대극에서는 볼 수 없는 쓸모없고 과한 비장미가 극본 사이사이에 넘실거렸다(당연히 떨어졌다).
나의 이러한 문제점은 초보 작가 지망생이 흔히 겪는 실수이기도 하다.
얼른 투고하고픈 마음에 다시 읽어보며 퇴고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출간에 적당한 매수를 채우기 위해 했던 이야기를 또 꺼내고는 했다. 몇몇 초보 작가 지망생은 급히 써내야 하니 최소한의 글감으로 내용을 채워보려고 하는데, 이 경우 분량을 채우기가 굉장히 어렵다. 결국, 중복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나를 채찍질하지 말 것
글쓰기는 결국 시간 싸움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시간’이란, 공모전과 같이 누군가가 정한 시간이 아니라 나 스스로 정하는 ‘시간’이다. 자신을 채찍질하지 말고 오랜 시간을 두고 글을 써야 한다는 의미다.
꾸준히 써서 차곡차곡 모은 글로 공모전에 접수했어야 했다. 썼다가 지웠다가 반복하며 다져진 글이 완성도를 더해가면 어떤 공모전이든 자신 있게 도전하고 어쩌면 좋은 결과를 얻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물론 원고와 방향이 너무 다른 공모전은 피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공모전 입상자는 꾸준히 글을 써왔던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약속한 일정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누군가(아니면 출판사)와 언제까지 원고를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그것은 웬만하면 지켜야 한다. 신뢰의 문제를 넘어서, 기다리는 처지에서 속이 타들어 간다. 내가 말한 ‘시간’은 어디까지나 공모전(혹은 투고)에 한정하는 것으로 하자.
커버 사진: Photo by Aron Visual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