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끄러움은 편집자의 몫인가
출판사에 이직하게 된 것은 순전히 전공 때문이었다.
문과를 나온, 시답지 않은 몇 년의 경력을 가진 백수가 갈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운 좋게 바로 연락해오는 출판사가 있었고(나중에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았던 걸 후회했지만),
그렇게 지금까지 출판계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에는 책에 대한 애정이 그리 크지 않았다.
먹고살기 위해 낯선 업계로 들어와서야, 내가 만드는 것들에 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권 겨우 읽었던 내가 인터넷 쇼핑몰 대신 인터넷서점을 밥 먹듯 들어가고 사람들과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말에 친구를 만나면 괜히 서점에 들러 책을 쓰다듬었다. 어떤 종이를 썼는지, 표지에 어떤 후가공을 했는지 일을 배울 겸 만져보는 것이었지만, 그저 책이라 좋아서 만져볼 때가 더 많았다. 그리고 친구에게 내가 만든 책을 보여주고, 판권에 적힌 내 이름에 기뻐하는 친구를 보며 뿌듯했던 적도 꽤 있었다.
그렇게 편집자로서 책을 만들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책을 만드는 일은 그리 근사하지 않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적은 업계의 연봉과 숨 가쁘게 흘러가는 출간 일정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어서가 아니다.
소리 지르고 떼쓴다고 좋은 책이 나오지 않는다. 책이 잘 팔리지도 않는다.
괜한 하소연일 수 있지만, 며칠 전 한 작가의 글을 두고 회사 내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작가의 꿈을 안고 출판사에 투고한 작가 지망생의 글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긍정적인 의견들을 쏟아냈던 사람들이 책이 얼마나 팔릴지를 두고 매우 날카로워졌다.
회사에 찾아왔던 그 얼굴이 생각났다. 나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어오던 메일 속 글들이 떠올랐다. 나의 의견을 소중히 대해주던 통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출판사를 믿고 다른 기회를 내려놓은 그 작가 지망생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왜 부끄러움은 편집자의 몫인가.
서점에서 책을 매만지던 나의 손이 괜히 부끄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