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싶은 책이 3권 정도 되는데, 모두 다 전자책으로 사볼까 고민 중이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시끄러운 가운데,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에 동참하고자 하는 의미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지금 당장 사 읽어야 할 책들이 아니다(책꽂이에 아직 읽지 않은 책이 가득하므로). 그저 전자책으로 사보려는 것은 ‘이 책들은 전자책으로 읽어도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이책은 수고로운 만큼 예쁘다.
원고에 알맞은 판형을 고르고, 페이지에 맞게 텍스트와 이미지를 짜 맞춘다. 손끝으로 이것저것 만져가며 종이를 고르고, 표지에는 어떤 후가공을 할지 다른 책의 겉면을 쓰다듬는다. 여기에 원하는 색감이 나왔는지 인쇄소를 찾아가 감리를 보는 때도 있다.
(전자책을 나름 즐겨 읽는 편이지만) 종이책의 만듦새를 따라가다 보면 전자책이 아쉬워지기 마련이다. 내가 다니는 곳이 종이책을 먼저 출간하는 곳이라 더욱 그럴 수도 있다. 즉 전자책은 종이책을 낸 후에 제작을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종이책으로 책을 처음 만날뿐더러, 종이책을 만드는 과정이 전자책보다는 비교적 복잡해서 손이 많이 가므로 더욱 종이책에 애정이 가는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전자책 출간에 집중하는 출판사에 다니는, 전자책 담당 편집자와 이야기를 한번 나누고픈 바람이 있다.
Photo by Jingda Chen on Unsplash
하지만 그 종이책들은 어떠한 상태로 있는가?
오늘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 하나를 꺼냈다가 흠칫 놀랐다. 양장으로 만들어진 책이었는데, 합지(양장 표지의 두꺼운 종이 부분)와 그 위에 붙여진 표지 사이에 들뜸이 느껴진 것이다. 읽지 않은 사이, 책이 볼품없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제작 공정 중에 어딘가 어긋나기 때문일 테지만, 두근대는 마음으로 받았던 첫 만남의 감흥은 시들고 말았다. 진작 빨리 읽어볼걸….
그 책을 굳이 종이책으로 읽었어야 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전자책이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을 듯했다. 그저 읽으면 되는 것이다. 소장이 아닌 완독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면, 즉 출퇴근길이나 잠자기 전에 틈틈이 읽어서 얼른 내 것으로 만들고픈 책이라면 전자책이 알맞은 선택인 듯하다. 앞서 사고 싶다고 말한 책들이 이러한 경우다.
벽돌책이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갖고 있던 벽돌책 몇 권이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누군가에게 읽으라고 빌려주었는데, 그 누군가도 나처럼 아직 다 읽지 못했으며 언제 다 읽을지 알 수 없는 듯하다. 돌려줄 날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며칠 전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나도 그 책이 어딨는지 모르겠어.”(어딨는지 반드시 찾아내야 할 거야….)
벽돌책에 달린 리뷰 중에는 이런 말이 간간이 하나씩 있다.
“들고 다니기 힘든데 그냥 전자책으로 살 것 그랬어요.”
작가의 진정한 팬이거나 종이책으로 소장하고픈 사람이거나 종이책으로 완독할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벽돌책은 전자책으로 만나는 게 빠른 방법일 수도 있겠다.
Photo by James Tarbotton on Unsplash
전자책은 생각보다 훌륭하다.
몇 년 전, 출판사로 이직해 전자책을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전자책에 엉성한 부분이 남아 있었다. 전자책을 만들고 서점에 등록하면서도 ‘이 전자책을 굳이 사볼까?’ 하는 마음이 든 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전자책을 꾸준히 사 모으는 사람이 됐다.
전자책 제작 노하우가 하나둘 쌓이면서, 전자책이 엉성할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낡은 생각이 됐다. 내가 출판사에서 경력을 쌓는 동안 전자책도 나름의 경력을 쌓은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자책도 꽤 읽을 만하다.
‘나는 전자책 잘 읽고 있는데?’
어쩌면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낡은 생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전자책을 사서 읽고 있다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읽을 만해?” 하고 물어보면서. 이 이야기는 그런 사람들에게 전하는 혼잣말일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내가 읽던 전자책을 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다 읽은 책을 누군가에게 재밌다고 추천하면서. 그리고 전자책으로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을 곁들이면서. 종이책으로 갖고 있었을 때는 이 책 한번 읽어보라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전해주기만 하면 됐었는데, 전자책은 그럴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서점에 가서 책을 같이 펼쳐보면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럼 친구는 대개 종이책으로 책을 사곤 한다.
커버 사진: Photo by Perfecto Capucin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