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어서
‘나는 당신의 반의반이면 충분합니다.’ 이 카피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최근 tvN 드라마 <반의반>이 아쉬운 성적을 거두며 조기 종영했다. 이 드라마는 정해인, 채수빈, 이하나 등 화려한 출연진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은 고사하고 계획했던 회차조차 줄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드라마 덕후로 웬만한 드라마의 첫 방송을 챙겨보는 편인데, 차마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관심이 가지 않았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으니 드라마의 전개나 대사, 흡입력을 탓할 수 없다. 시청률이 저조했다고 드라마가 무조건 나쁠 리도 없다. 내가 이 드라마에 손이 가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 카피였다.
드라마 방영 전 공개된 예고편에서는 감성적인 드라마 이름만큼이나 감성적인 카피가 붙었다.
‘나는 당신의 반의반이면 충분합니다.’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려웠다. 분위기로 봐서는 따스한 멜로드라마인 것 같은데, 다른 멜로드라마와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예전 같았으면 방송사의 드라마 홈페이지에 들어가 기획의도와 인물 소개를 찬찬히 읽어보았을 텐데, 제목 한 번 카피 한 번, ‘반의반’만 총 두 번 언급하고 사라지는 짧은 예고편에 꽤 당황했다. ‘인공지능 프로그래머 하원과 클래식 녹음 엔지니어 서우가 만나 그리는 시작도, 사랑도, 끝도 자유로운 짝사랑 이야기’ 기사를 통해 알게 된 로그라인도 어떤 드라마인지 파악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마치 에세이 같은 제목을 가진 드라마. <반의반>은 그래서 더욱 아쉬웠다. 도서명만 보고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에세이들이 종종 있다. 이 경우 도서명은 표지와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는 용도로 쓰이고 카피가 책의 존재 이유를 알린다.
‘반의반’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에세이처럼 감성적인 멜로드라마라는 점을 알리는 데는 성공한 듯싶다. 하지만 제목만으로는 그 외의 것을 알기 어렵다. 반의반은 그저 ‘절반의 절반’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일 뿐이니까.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처럼 등장인물의 직업이나, JTBC <부부의 세계>처럼 인물 간의 관계를 슬쩍 파악하기도 어렵다. 드라마 방영 소식이 전해졌을 즈음, ‘반의반이 무슨 의미지?’ 궁금해서 카피를 보니 반의반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아니, 반의반이 도대체 무슨 의미냐니까?
이 글을 쓰며 홈페이지의 기획의도를 살펴보니 짝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반의 반. 네 마음의 그저 작은 ‘조각’ 하나면’이라는 부분이 등장한다. 반의반은 짝사랑의 다른 표현이었던 듯싶다. 이제야 알았다.
카피가 인상적이지 않은 드라마도 있고, 아예 카피가 따로 없는 드라마도 있다. 나는 카피 따라 드라마를 챙겨본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출연진과 제작진, 특히 드라마 작가를 따라 드라마를 시청했을 뿐. 괜히 <반의반>을 걸고넘어지게 된 건 회사에서 책의 이름과 카피를 정하느라 머리를 싸매면서 생긴 직업병 때문인 것 같다. 두서없는 이 글의 결론은 ‘카피를 짓는 건 꽤 어렵다’이다. 궁금증은 조금 풀렸지만, 여전히 <반의반>의 카피가 아쉬워서 그리고 나 또한 책에 아쉬운 카피를 내걸었던 적이 있어 미련하게 한마디 더 붙여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책이라도 궁금하면 펼쳐서 훑어보면서, 괜히 드라마에만 쩨쩨하게 굴었다. 드라마 정체가 궁금하다면 그저 챙겨보면 될 일이었는데…. 괜스레 예민해져서 드라마 덕후답지 않게 첫 방송을 놓친 것 같아 아쉽다.
커버 사진: Photo by Med Badr Chemmaou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