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읽을 만하니 다행이야
책을 네 권쯤 샀다.
읽고 싶었던 책 세 권과 담당하게 된 원고의 참고도서 한 권. 읽고 싶었던 책 중 두 권은 아직 살 필요가 없는데 이번에 굳이 산 것이다. 사은품을 받기 위해서. 종이책으로 5만 원 이상 사야 사은품을 준다길래(사려던 책 중 몇 권은 아직 전자책이 출간되지 않았다).
나와 사은품에 얽힌 역사는 깊다.
한때는 사은품을 우선순위에 두고 거기에 맞춰 책을 고르기도 했다. 즉, 사은품을 줄 수 있는 책을 선택했다.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바로 ‘이벤트’ 페이지를 클릭하고 어느 책이 어느 사은품을 주는지 요리조리 따졌다. 혹시나 책이 나와 맞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결국 원하는 사은품에 맞춰 책을 샀다. 결과는 의외였다. 내 취향과 너무 다른 책을 고르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책은 그냥저냥 읽을 만했다.
반면 무턱대고 고른 사은품이 문제였다.
연필 끝에 달려 있는 지우개용 고무가 녹아버리질 않나, 여권 케이스인데 여권이 못 들어가지를 않나. 책을 보호하는 용도라는 북커버는 오히려 독서를 방해했다. 북커버에 책을 끼워 넣고 낑낑대며 읽다가 분에 못 이겨 북커버를 멀리 치워버렸다. 현재 북커버는 집 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아마 잊히고 만 틴케이스들(이것도 역시 사은품으로 받았다)과 함께 있겠지.
물론 만족스러운 사은품도 있었다.
지난달에 책을 사고 받은 유리컵도 잘 쓰고 있고, 책 표지를 닮은 노트도 잘 들고 다닌다. 이제 여름이니 작년에 받은 미니 선풍기를 꺼내야겠다.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다양한 에코백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반면 사은품과 달리 책들은 요긴하게 써먹지 못했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산더미다. 오늘 책을 사고 나서 집 안의 자그마한 책장을 둘러보니 낯선 책들로 가득했다. 초면이라 반가웠는데, 사실 꽤 오래전에 산 책이었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뭐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
사실 사은품이 가장 반가울 때는 동네서점에 갔을 때다.
온라인 서점과 달리 동네서점에 들르면 책에만 관심을 두는 편이다. 시간을 보낼 겸 들렀다가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들고 나올 때가 많은데, 계산대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자그마한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묘하다. 스티커나 책갈피 같은 아기자기한 것들인데, 그동안 마일리지를 털어가며 받았던 사은품보다 반가울 때가 많았다. 뜻밖의 선물이라 그랬나 보다.
앞서 사은품을 보고 고른 책이 읽을 만해서 다행이라고 했지만,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았다.
사은품은 만족스러워도 책이 별로라서 아쉬웠던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실패를 발판 삼아 이제는 읽고 싶은 책이 사은품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쌓이면 그제야 구매한다. 사은품도 찜해둔 책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것들만 고른다. 이제 웬만한 종류의 사은품은 다 갖고 있으니까. 파우치부터 우산, 미니 선풍기, 유리컵, 틴케이스, 북커버, 볼펜 등. ‘돈이 아깝다.’ 하는 생각이 들 법하면 마음을 고쳐 먹는다. ‘얼른 읽으면 되지. 그래도 책은 읽을 만하니 다행이야.’ 하면서.
모든 사은품이 사랑받지는 못한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사은품 중 인기 없는 것들은 몇 달 뒤 회사로 되돌아온다. 내가 담당했던 책의 사은품이 고스란히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사은품도 책만큼 신중하게 선택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굳이 이럴 거면 사은품 이벤트를 꼭 해야 하나?’ 하는 반발심도 머리를 들이민다. 정작 나는 사은품 따라 책을 사면서. 동네서점에서는 한 권만 잘도 사면서, 온라인 서점에서는 한 권만 장바구니에 담으면 왜 이렇게 허전한 마음이 드는지. 정작 책에 슬그머니 꽂힌 책갈피를 발견하고 반가워하면서. 아니, 책 내용만 괜찮아도 만족해하면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커버 사진: Photo by Florencia Viadan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