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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히 Jun 16. 2020

고만고만한 언어들

흔해도 괜찮아

예스24에서 재미있는 이벤트를 열었다.

‘솔직히 헷갈린 적 있다’는 이름의 ‘쓸모 없지만 재밌는 기획전’이다. 서로 이름이 비슷한 출판사 열 곳을 두 곳씩 한 쌍으로 엮어 소개하는데, 인문MD가 선정한 만큼 인문 도서를 출간하는 출판사들이 등장한다. 이름을 마주 대니 정말 그만그만하다.


광고로 오해할까 싶어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하나의 예만 들겠다. ‘남해의봄날’과 ‘봄날의책’. 실제로 내가 이름을 헷갈렸던 출판사다. 소개를 더 하자면 남해의봄날 출판사는 최근 『임계장 이야기』라는 노인 노동자에 관한 책을 펴냈고, 봄날의책 출판사는 『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이라는 책을 통해 노작가와 고양이의 묘한 인생을 풀어낸다.


Photo by NordWood Themes on Unsplash


책 주문이든 단순 문의이든, 간혹 출판사로 엉뚱한 전화가 걸려올 때가 있다.

보통 출판사 또는 도서명이 헷갈려 생뚱맞은 출판사에 전화를 건 셈인데, 나의 경우 도서명이 헷갈리는 사람들의 전화를 간간이 받았다. 아니면 옆자리에서 전화기 너머로 실제 사실을 알게 된 누군가의 스스러운 웃음소리를 듣거나.


출판사 이름도 그렇지만, 나 또한 전화를 다급히 끊어야 했던 사람들처럼 특히 도서명이 헷갈린다. 에세이의 경우 더욱 그렇다. 최근 출간된 김이나 작가의 『보통의 언어들』을 발견하고 ‘언어’라는 두 글자를 사용한 에세이를 찾아봤다. 『요가의 언어』 『밤의 언어』 『몸의 언어』 『공감의 언어』 『하루키의 언어』 등. 검색해보니 꽤 많았다. ‘보통의 언어’라고 했으면 다소 구분하기 어려울 법했는데, 뒤에 ‘들’을 붙인 것이 신의 한 수인 것 같다. 그래도 익숙해 보이는 건 매한가지.


같은 분야에서 비스름한 이름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구나.’라는 엉뚱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 분야를 즐겨 읽는 사람들은 그러한 제목을 선호하고, 편집자 또한 이러한 점을 책에 반영한다는 느낌. 물론 책을 쓰는 작가도 이러한 점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고려했을 것이다. 비슷한 이름이라도 디자인으로 충분히 차별점을 만들 수 있으니 딱히 문제는 없어 보인다. 어찌 김이나 작가의 사진이 크게 실린 띠지를 보고서 『보통의 언어들』이 그의 책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Photo by William Felker on Unsplash


나는 이러한 점을 인식하면서도 책 이름을 정할 때 고민이 많다.

특히 내가 즐겨 읽지 않고 그저 일로서 대하는 분야의 경우에 그렇다. 경제경영 도서, 특히 부동산이나 주식 관련 도서의 경우 내가 떠올리는 이름은 독자에게 잘 와 닿지 않는다. 분야 특성상 ‘당장 지금 사야 할 책!’이라는 강조점이 이름 아니면 카피에서 느껴져야 하는데, 그것이 괜히 독자를 부추긴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지금 읽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읽어볼래요?’ 정도로 제목 회의를 준비하면 당연히 퇴짜를 맞는다. 경쟁 도서의 제목을 분석하며 스스로 주문을 건다. ‘이 책은 시의적절한 책이고, 당장 사 읽어야 좋다.’ 하고. 그럼에도 제목 회의는 변변히 고전을 면치 못했다. 편집자는 정말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만나야 하는구나 하고 매번 느낀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서 몇 달째 이와 관련된 여러 분야의 책들이 등장했다.

아무래도 도서명에 ‘코로나’를 넣어야 하는 만큼 이름은 서로 비슷하다. 다만 디자인으로 차별점을 두었는데, 새삼 디자이너가 고민이 많았겠구나 하고 실감한다. 이름은 비슷비슷한데 묘하게 디자인이 서로 겹치지 않는 책들을 보면서 서점 매대가 궁금해졌다. 알록달록 책들이 나의 시선을 붙잡겠지.


책 이름이 비슷한 만큼 잘못 선택할까 싶어 더 꼼꼼히 살피게 되는 것 같다. 이걸 노리고 고만고만하게 이름을 지은 걸까. 괜히 베스트셀러에 ‘코로나’가 많아진 것을 보고 든 생각이다.



커버 사진: Photo by Rodion Kutsae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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