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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히 Sep 21. 2020

또 연예인이 책을 냈네

푸념보다는 희망의 말을

“허무하다, 허무해.”

A씨가 푸념하듯 말했다. 사무실 안에서 가장 끝쪽에 있지만, 모든 직원의 시선이 모이는 자리. 그곳에서 일하는 A씨가 내뱉은 말은 자리 선정만큼이나 파급력이 있었다. 누군가가 그의 말에 “무슨 일이에요?” 하고 대꾸해줘야 한다는 것. 아니나 다를까, 마음씨 좋은 어느 직원이 말을 걸어줬고, A씨는 특유의 칭얼대는 말투로 “이번에 연예인 ○○○이 낸 책, 벌써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잖아.” 하고 대답했다. 이어지는 깊은 한숨, A씨는 마음의 찌꺼기가 남았는지 한동안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작가의 명성이나 유명세로 책이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은 흔하다.

온라인서점에 책의 서지정보가 미처 다 올라오기도 전에 판매지수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경우도 가끔 목격했다. 그곳에는 “작가님 믿고 삽니다.” 같은 댓글이 서지정보 대신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서점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가 ‘연예인’이라는 것. 그 연예인의 글솜씨도 모르는 채, 많은 사람이 ‘뭣도 모르고’ 책을 사들인다는 것. 그래서 묵묵히 좋은 책을 만드는 ‘조그마한’ 출판사에서는 맥이 빠져버린다는 것. A씨가 푸념한 이유는 아마 이러한 것들이 아닐까.


나에게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들기’는 꿈과 같은 일이다.

맡은 도서 분야가 특수한 탓도 있지만, 애초에 유명세가 아니면 진입하기조차 힘들다. 인기 있는 작가의 책이거나 방송에 소개된 책이거나,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난 책이거나, 유명인사의 추천사를 받은 책이거나, 그도 아니면 광고의 힘을 빌린 책이거나……. 이 모든 걸 쏟아붓는다고 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분명 해당 출판사에서는 이번 책을 펴내며 편집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총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니 연예인이 낸 책이라고 해서 출판사의 수고를 무시할 수는 없다.

내가 다니 출판사에서도 그러한 경우를 종종 겪었다. 느 유명 작가의 이름값으로 출간 후 며칠 뒤 그 작가의 책이 베스트셀러 문턱에 오른 것이다. 즉 출판사에서도 어느 작가든 그의 명성에 기대려는 분위기는 존재한다.

그럼에도  다들 힘들다고 하는 ‘성역’에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성큼성큼 올라서니, 오랫동안 출판일을 해온 A씨가 허무해하는 것도 살짝 이해가 된다.


솔직히 나 또한 신입 때는 허무감을 느끼기는 했다.

그러고는 “저 태산 같은 곳을 쉽게 오르다니.” 감탄하면서 틈틈이 온라인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를 체크했고, 그 이유를 분석해봤다. 다른 사람은 다 알지만 나만 모르는 작가, 즉 SNS나 유튜브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린 작가는 구글에 쳐봤다.

“아,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구나.” 그 작가가 평소에 팬들과 소통하며 꺼냈던 말들이 구글에 쏟아져 나왔고, 하나하나 읽어보며 재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저렇게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이면, 팬들이 책을 사볼 만하네.” 이윽고 나에게 그들은 다른 유명 작가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다.


Photo by Christin Hume on Unsplash


학창 시절 책을 등한시했던 나에게는 ‘문호’로 불리는 몇몇 작가의 책 외에는 웬만하면 모든 책이 ‘인스타그램 작가’나 ‘유튜버’처럼 그저 낯설기만 하다(책 좀 많이 읽어둘걸).

“이름은 들어본 것 같은데, 재미있을까?” 하고 서점에서 똑같이 표지를 둘러보고 책을 펼쳐서 대강 훑어본 다음 사는 책. 작가에 대한 찬사로 책을 포장해도, 내가 읽어보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독서 무식자의 눈에는 그저 똑같이 ‘읽어봐야 아는 책’이 될 뿐이다.

다만 꾸준히 글을 써왔던 작가의 경우에는 글솜씨를 기대할 만하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이러한 점에 기대어 이름은 낯설어도 작품 활동을 이어왔던 작가들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연예인이라고 해서 뭐 다를까 싶다. 책을 이제야 써냈을 뿐 평소에 꾸준히 글을 써왔을 수도 있고, 생각의 깊이가 남다를 수도 있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그들이 써낸 책이 무조건 사랑받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책을 집어 든 사람들이 책을 읽고 여기저기 책에 대한 감상을 전하면서, 책은 곧 민낯을 드러낸다. 좋은 책은 꾸준히 잘 읽히고, 그렇지 않은 책은 작가의 홍보나 광고에 매달리다 금세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것은 전문 작가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또한,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경쟁이 치열한 만큼 베스트셀러 순위는 곧 뒤바뀐다. A씨의 이야기는 꽤 오래전 일인데, 내 기억에는 허무하다는 말을 꺼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A씨가 다시 푸념할 일은 없었다.




오히려 이때, 즉 책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시대에 푸념이 아니라 좋은 말을 듣고 싶다.

일전에도 앞선 사례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옆에 앉은 동료는 나에게 이러한 말을 건넸다. “사람들이 그 연예인의 책을 사러 서점에 들어왔다가 다른 책들도 사서 읽어봤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우리가 만든 책도.”



커버 사진: Photo by Christin Hum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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