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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히 Oct 11. 2020

신입 편집자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

우리 잘 살아봐요

며칠간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한 문장도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요즘 회사에서 주변을 맴돌고, 지금의 자리를 지켜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앞서 글에서도 몇 번 언급했지만, 나의 편집자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이쯤 되면 자리도 마음도 잡고 일할 법한데, 여전히 나는 미로를 헤매고 있다.

참고로 나는 경력이 나름 쌓였지만, 어디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력서와 인수인계서만 잔뜩 썼다. 경력의 몇 퍼센트는 이렇게 날린 셈이다. 잦은 이직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책을 꾸준히 만드는 흐름에서 계속 비껴가다 보면 업무를 배우는 속도가 자연히 느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적어보는 ‘신입 편집자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

방금 말한 대로 나는 경력도 애매한 데다 먹고살기 바빠 출판계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서툴다. 아랫글은 나의 경험 위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 어느 정도의 편견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이상하다 싶은 말은 한 귀로 잘 흘려들으시길.     

Photo by Bethany Legg on Unsplash




1. 출판사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자

출판계의 소문은 조그맣게 굴러다녀서 주변에서 알기 힘들다. 출판계 인맥이 전혀 없던 신입 시절, 내가 찾아간 회사가 하필이면 내로라하는 ‘빡센’ 출판사였던 적도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격으로 깨나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2. 잡플래닛 등, 리뷰를 찾아보자

리뷰를 전부 믿을 수는 없다. 윗사람의 지시로 직원이 써낸, 자화자찬 일색인 리뷰도 있고, 반대로 퇴사한 직원이 회사에 악의를 품고 무조건 나쁘게만 몰아가는 일도 있다. 특히 리뷰가 유독 좋은 출판사에서는 잡플래닛 리뷰를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있다는 소문도 돈다. 회사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정도로만 알아두면 좋을 듯하다.     


3. 가족회사… 참 곤란하다

(다른 업계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출판사 중에는 가족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잡플래닛에도 가족회사임을 알려주는 글이 간간이 보인다. 나는 다양한 조합의 가족회사를 두루 경험했다. 가족회사도 회사 나름이니, 면접 때 분위기를 잘 살펴봐야 한다. 가족이지만 남남처럼 일하는 예도 있고, 아예 한 몸처럼 굴면서 심지어 감정까지 공유하는 예도 있다. 당연히 이때의 감정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회사에 대한 불안감뿐. 개인적으로 추천하지 않는다(좋은 회사를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4. 판권을 보자

(때에 따라 다르지만) 인터넷서점에서 미리보기로 판권까지 살펴볼 수 있다. 아니면 서점에 가서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나의 경우에는 퇴사가 잦은지 가족회사인지 파악할 용도로 이력서를 보내기 전에 많이 찾아봤다. 그러다가 판권에 발행인만 적힌 출판사도 종종 마주쳤는데, ‘별일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보냈다가 나중에 가족회사인 걸 알고 난감했던 적이 있다.     


5. 분야에 나를 맞추지 말자

신입 시절, 도저히 원하지 않는 분야라도 내가 배우고 잘 맞추어가면 금방 익숙해질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다. 편집하는 책 분야가 나와 너무 맞지 않으면, 굉장히 힘들다. 평상시에 그 분야를 사려 깊게 살펴보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궁리해봐야 하는데, 그 분야의 책을 집을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관심이 자연히 줄어드니 책의 완성도도 떨어지고, 그에 따라 회사에서 압박도 많이 받는다. 무엇보다 편집자로서 자신감이 줄어든다.     


6. 편집 외의 것만 잔뜩 배우면 안 된다

소규모 출판사의 경우에는 직원이 부족한 탓에, 편집자가 편집 외의 업무도 맡게 된다. 나 또한 그러한 경험을 많이 했고,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회사 사정도 이해해줘야지 별수 있나. 다만, 아무리 일을 해도 편집 업무에서 배울 점이 없다면 웬만해서는 오래 머물지 말았으면 한다. 의외로 편집자를 믿지 못하고 편집 업무를 윗사람이 도맡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곳에서 편집자는 주로 오탈자만 보고,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거부당하기 일쑤다. 당연히 밖에 나가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7. 출간 권수를 꼭 물어볼 것

편집자가 일 년에 몇 권 정도 출간해야 하냐고 꼭 물어봐야 한다. 책의 분야나 특성에 따라 출간 권수는 천차만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수가 꽤 많아 보이는데 무조건 내가 해낼 수 있을 거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나마 남아 있던 책에 대한 애정이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특히 해당 출판사의 책이 한 달에 몇 권 정도 나오는지 알아두어야 한다. 편집부 수에 비해 많다고 느껴진다면, 피하는 것이 상책.      


8. 안 되겠다 싶을 때는 빠른 손절

‘버티면 되겠지?’ 하고 한계에 이를 때까지 견디다 보면 몸과 마음 상하고, 무엇보다 시간이 훌쩍 날아가 버린다. 도저히 나와 맞지 않겠다 싶을 땐 얼른 그곳을 벗어나길 바란다. 버티면서 상처를 받는 편집자를 너무 많이 봐왔다.



커버 사진: Photo by Ines Iachelin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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