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줄짜리 글이 가져오는 것들
한 줄짜리 추천사가 화제다.
화제의 이유는 추천사가 짧아서가 아니라, 하고픈 말을 모두 꺼내지 못해서.
괜히 머리를 굴리자면, 위쪽에 자리한 어느 배우의 추천사가 조세호의 추천사를 가로막은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추천사가 길었다면, 그에 맞게 구성을 조정하면 되는 일이다. 아니면 다른 곳에 배치하거나.
본문 첫머리에 추천사를 모아두는 책도 있고, 면지 부분에 싣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보도자료나 광고 이미지 등에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어느 편집자의 솜씨인지는 모르지만, 참신한 발상인 것 같다. 정말 조세호는 먼저 그 말을 꺼냈을까? 아니면, 우선 추천사를 뒤표지에 앉혀두고 조세호에게 확인을 받았을까?
나에게 추천사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작가가 직접 부탁한 추천사 말고, 내가 편집자로서 의뢰한 추천사는 자주 퇴짜를 맞았다.
거절하는 사람 대부분은 미안한 마음에 에둘러 사정을 설명한다. 일정이 바쁘다거나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이유 등을 댄다. 일정이야 조절하면 그만이고, 글이야 편집자와 상의하면 될 것을. 빙빙 돌려 거절을 말하면서도 협의의 가능성은 일절 남겨두지 않은 메일을 보고 바로 체념해버리기 일쑤였다.
거절한 사람 중에는 그러고서 나중에 책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거절할 당시에는 말하지 못했던 숨은 사정이 그제야 밝혀진 셈이다. 자신의 책에 집중해야 할 시점에 남의 책에 이름을 얹기란 쉽지 않다. 참고로, 감수 의뢰도 이런 식으로 많이 거절당했다.
추천사를 받지 말자니 홍보 수단을 하나 포기하는 것 같고, 추천사를 받자니 마땅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건, 추천사를 써주는 사람이 한정적이어서다.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의외로 여러 책에 이름을 들이미는 추천인이 많다. 어떻게 그 많은 책을 읽고 추천해주는 것인지. 추천사를 써주는 유형은 다양하다. 원고를 꼼꼼히 살펴보고 정성을 듬뿍 담아 글을 써주는 사람도 있는 반면, 원고를 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작가만 믿고 기꺼이 추천사를 써주는 사람도 있다. 글만 후루룩 써준다고 해도 그렇게 자주 등장할 정도면 힘들지 않을까?
골머리를 앓을 바에 색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할 텐데, 몇몇 인물 말고는 대안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이라는 조건을 먼저 충족하는 인물이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다. 그다음으로는 '추천사를 써본 사람'이라는 조건이 따라온다. 그 두 가지에 부합해야 내부의 승인을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력이 늘어날수록 쉬운 길만 찾아가는 꼰대가 되어가는 듯하다.
작가나 담당 편집자의 인연으로 추천사를 '무료로' 써주는 사람도 있지만,
인지도나 전문성을 무기로 비용을 받고 추천사를 써주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추천사 비용을 받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책을 추천한다면서 왜 돈을 받는 거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당시에는 추천사에 비용을 들이는 것을 꺼려했던 회사 분위기 탓에 추천사를 제안할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추천한 사람의 이름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는 것을. 그것도 꽤 오래.
표지에 박히거나 보도자료 등에 실려서 또는 서점 매대 위 광고판으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받는다. 독자가 추천사만 믿고 책을 사 보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이름을 내걸고 추천의 글을 남기는 만큼 위험 부담이 생기기 마련이다. 안면도 없는 작가의 책이라면 더더욱.
무엇보다 추천사도 하나의 '글'인데, 글을 써준 데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판사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탁하는 만큼, 지푸라기 값은 적당히 치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떠오른 '신박한' 추천사 하나.
오래전에 일하다가 마주친 어느 에세이의 추천사인데, 독특하게 '작가의 엄마'가 딸에게 몇 줄짜리 추천사를 남겼다. 유명인만 찾아보던 나의 눈앞에 진솔하고 정다우며 진심 어린 추천사가 반짝였다. 책을 사두거나 어디에 적어둘 걸 그랬다.
그 추천사는 꽤 오랫동안 내 안에 자리했다. 추천사의 힘은 대단했다.
(언젠가 찾으면 여기에 올려두겠습니다.)
커버 사진: Photo by Ergita Sel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