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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히 Jan 06. 2021

우리는 언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여행자의 책』을 다시 읽으며

『여행자의 책』(폴 서루 지음, 이용현 옮김, 책읽는수요일, 2015년)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에 샀던 책. 『여행자의 책』(책읽는수요일, 2015년)은 폴 서루(Paul Theroux)라는 미국 소설가가 쓴, “여행 안내서이자 실용서, 문집이자 편람, 독서 목록이자 회상록으로 간주될 수 있을(13쪽)” 책이다.

50년간 세계를 여행하고 40년 넘게 여행에 대한 글을 써온 작가는, 이 책에서 ‘여행이란 무엇인가’ ‘기차 여행의 즐거움’ ‘여행기를 쓴다는 것’ 등, 자신의 방식대로 여행의 본질을 탐색한다. 읽다 보면 여행은 그저 매개체로 두고, “여행은 흔히 인생에 대한 은유로 사용된다(13쪽)”라는 작가의 말처럼 삶의 태도에 대한 비유가 곳곳에 드러난다. 자신의 감상을 적어내는 것은 물론, 자신의 작품과 그가 읽었던 수많은 작가의 책에서 빼어난 글들을 추려내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이 책을 살 당시, 나에게는 자그마한 월급에서 그보다 작은 조각을 떼어내 언젠가 여행을 가고 말리라 하는 바람이 있었다. 국내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한참을 날아가 낯선 언어로 가득한 거리 위를 걷는 꿈. 그 꿈은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남들은 나이 꽤 먹고서  여권을 써먹지 못한 나를 무척 신기해했다. “일본이라도 갈 수 있지 않아?” 악의 없이 내뱉은 그 말이 지금껏 마음 한구석에 맺혀 있다.


Photo by Mesut Kaya on Unsplash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 서점에 『여행자의 책』을 검색해보니, 그 당시 국내외 인사는 물론 언론에서 후한 평가를 받았던 모양이다. 폴 서루와 절친한 사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책머리의 ‘추천의 글’에 이름을 남겼다. 아마도 추천의 글은 한국어판에서 따로 공간을 내어 마련한 것이겠지만. 독자의 평가는 각양각색이었지만, 독자평에 담긴 여행을 꿈꾸는 소박한 바람이 무척 낯설었다. 5년 사이 ‘여행’은 이렇게 달라졌다.

지금은 일본 여행을 권했던 사람도, 그리고 일본 땅조차 밟지 못한 나에게도 여행은 아득해진 지 오래다. 여권에 도장을 꾸역꾸역 찍어보겠다는 욕심으로 추진한 일본 여행은 노 재팬과 코로나19라는 거센 파도에 금방 묻히고 말았다. 나 자신을 부추기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터라 일본에 가지 못한 게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바이러스가 1년 가까이 이어질 줄이야. 우리는 언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여행은 마음의 상태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이국적인 곳에 있는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여행은 거의 전적으로 내적인 경험이다. - 『신선한 공기의 마니아』
- 『여행자의 책』 18쪽에서 발췌.     


여행의 가장 큰 보상 중 하나는 가족, 오랜 친구들, 친숙한 장소들, 집의 안락한 편의시설, 자신의 침대 등을 재확인하는 고향으로의 귀환이다. - 『오세아니아의 행복한 섬들』
- 『여행자의 책』 55쪽에서 발췌.     





생활 반경을 벗어나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이 무척 버거운 요즘, 5년 전에 읽고 책장 구석에 넣어놓았던 이 책을 다시 꺼낸다. 이 책에 대한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책 소개를 읽고 홀린 듯 구입한 책이지만, 공감하기 어려울뿐더러 어디론가 자꾸 떠나라고 나를 부채질하는 것만 같았다. 생활도 내려놓고 위험도 감수하면서 떠나라는 말이 공허하게만 들렸다. 책이 문제라기보다는, 그 당시 심사가 꼬인 탓에 조언이든 충고든 채찍질로 여기곤 했다. 공감하기 어려웠다는 이유도 이렇게 꼬인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지금 이 책을 샀다면 집콕을 달랠 소소한 재밋거리로 여겼을 텐데….

5년 사이 본문 종이는 살짝 누레졌지만, 첫 만남 때처럼 여전히 책은 잘 펴진다. 완독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꾸역꾸역 읽은 책, 이 책을 5년 만에 다시 찾을 줄은 몰랐다. 다시 읽으니 ‘집에 머물기’라는 목차가 새롭게 다가온다. 작가는 “여행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다(288쪽)”고 했지만.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영국에서 몇 년간 젊은 시절을 보냈을 뿐이다. 소로는 결코 미국을 떠나지 않았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은 거의 집에 매여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이국에 대한 훌륭한 글을 썼다. 집에 머무는 것, 내부에 머무는 것, 제자리를 맴도는 것은 관습적인 여행의 방식에 길들여진 정신을 자극할 수 있다.
- 『여행자의 책』 289쪽에서 발췌.



커버 사진: Photo by Sebastien Gabri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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