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는 본의 아니게 자주 의심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전문 지식을 갖춘 작가가 써냈더라도, 또한 대중이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사실을 실었더라도 원고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유비무환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여 많은 출판사에서는 편집자의 확인 과정을 당연한 절차로 받아들인다. 일정에 쫓길 때는 무언의 압박을 받기도 하고, 내 손을 떠난 원고에 문제가 없는지 출간 이후에도 마음을 졸이는 편집자의 숙명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다행히 편집자의 의견을 반가워하는 작가가 많아, 힘겨운 과정이지만 힘이 난다.
애초에 오류가 실린 원고를 계약하지 않으면 끝날 일이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국내 작가를 통한 출간의 경우에는 계약 성사 후에 전체 원고를 받을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물론 전체 원고를 한번 읽어보고 작업에 임하면 큰 문제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부랴부랴 편집 작업을 시작하면 뒤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흔하다. 원고 뒷부분에 슬며시 오류가 실려 있는 것이다. 다행히 국내 작가와 일할 때는 상의를 거쳐 해당 부분을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번거롭다고 여기지 않고 편집자의 의견을 기꺼이 들어주는 작가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외서 번역을 통한 출간의 경우에는 계약 전에 자세히 검토하지 않으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선인세를 내고 계약을 마친 다음 번역까지 끝냈는데, 그제야 오류가 툭 하고 튀어나오는 것이다. 검토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외국어로 되어 있는데다가, 아무리 외국어 능력을 갖춘 편집자라도 몇백 페이지의 외서를 전체적으로 확인할 만한 시간을 얻기 힘들다. 출판사에 따라 외부에서 프리랜서를 통해 검토서를 요청하기도 하는데, 깊이 파고들지 않는 이상 세세하게 파악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번역 출간의 경우에도 수정 및 삭제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저작권사를 통해 작가에 전달하기 위해 오류에 관한 메일을 작성해야 한다. 다행히 나의 경우에는 번역 출간을 돕는 국내 에이전시를 통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장문의 메일을 번역하여 전달해야 했을 에이전시 담당자가 수고한 덕분이었다.
짧은 부분이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작가에게 확인을 받아 고치면 된다. 그러나 어느 목차 전체에 오류가 가득하면, 도려내는 데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우선 몇 페이지가 통째로 사라지는 만큼 책이 빈약해지고, 또한 원작자가 그러한 상황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출판사로서는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나는 이러한 지경에까지는 이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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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그릇된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한 적이 있다.
작가가 편견으로 만든 역사적 사실에 관한 오류, 즉 ‘잘못된 역사’였다. 다행인 점은 두 가지였다. 먼저 많은 사람이 알아챌 만한 오류라서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나의 눈에도 쉽게 띄었고, 또한 그 책들은 오류를 그대로 둔 상태로 내 손을 거쳐 출간되지 않았다.
몇 년 전 국내 작가가 쓴 원고에서는 어느 현대사 사건에 관한 선입견이 하나 실려 있었다. 이미 거짓으로 밝혀진 이야기였고, 작가의 확인을 거쳐 해당 부분을 삭제하여 무사히 출간했다.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이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내용이라서, 작가도 쉽게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찔했던 것은 번역을 통해 세상에 나올 책이었다.
한 책은 내가 출판사에 입사하기 전에 이미 번역이 끝난 상태였고, 다른 책은 원서 자료를 받아 검토하는 중이었다. (서로 다른 시점에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만난 책들이다.) 두 책 모두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해 몇 문단을 할애하였는데,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가 겹친 만큼 문장 몇 개를 고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번역이 끝난 책의 경우에는 작가의 논조 자체가 한쪽으로 치우친 탓에 나는 입사 초기임에도 조심스레 출간하지 말 것을 권했다. 다행히 출간되지 않았지만, 출판사로서는 선인세와 번역비 등 꽤 큰 비용을 감수해야 했다.
검토하던 책의 경우, 다행히 검토하면서 오류를 찾아냈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오류를 담았다기보다, 많은 국내 독자에게 실망을 불러일으킬 내용이 실려 있었다. 전쟁 속에서 스러져 간 많은 조선인에 관한 이야기가 한낱 재밋거리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외국인 작가의 눈에는 그리 비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다행히 검토 과정에 머물렀기에, 내부 회의를 거쳐 거절 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실수가 불러올 파장이 두렵기에, 나는 꾸역꾸역 확인을 위한 시간을 버는 편이다.
물론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큰일이지만, 편집자로서 자신의 손을 거쳐 만들어낸 ‘잘못된 책’이 서점 매대 위에서 독자를 만난다는 사실은 더욱 무겁게 다가올 것이다. 내가 편집했음에도 서점에서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 책들이 많다.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고, 오늘도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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