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57만 3천 원 티셔츠
나는 오늘도 고무판을 깎는다.
칼끝이 지나가면 하나의 단어가 드러난다.
부다다당.
그 단어는 티셔츠 앞판에 찍힌다.
가슴 위, 단단하게 박힌 리듬.
넘어져도 일어나고, 다시 부딪히고, 다시 살아내는 소리.
내 하루가 내뱉는 구호.
그리고 뒤판에는 크게 새겨진다.
더블크로스(XX).
내 철학, 내 브랜드, 내가 세운 간지의 기호.
누군가는 로고라 부르고, 나는 선언이라 부른다.
앞에는 리듬.
뒤에는 철학.
그 두 개가 합쳐져 한 벌의 옷이 된다.
내가 만든 고무판으로 찍을 수 있는 건 단 12장뿐이다.
그 이상은 찍지 않는다.
한 판은 하나의 세계이고, 하나의 시리즈다.
첫 장의 값은 57만 3천 원.
그다음 장부터는 장당 5만 원씩 오른다.
두 번째는 62만 3천 원, 세 번째는 67만 3천 원.
그렇게 마지막 12번째 장은 107만 3천 원이 된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찍을수록 비싸지는 거야?
나는 대답한다.
판이 닳아서가 아니다.
먼저 산 사람에게 리스펙트를 주기 위해서다.
첫 번째 구매자는 가장 싼 값에 산다.
마지막 구매자는 가장 비싼 값에 산다.
그 순서 전체가 존중이다.
처음 산 사람은 기준을 가진다.
가장 먼저 움직였다는 간지를 가진다.
마지막 산 사람은 전설을 가진다.
가장 비싼 값으로도 살 만하다는 증거를 가진다.
그 사이에 산 사람들은 각각의 시간을 산다.
누군가는 빠른 선택의 자신감을,
누군가는 뒤늦게도 놓치지 않은 끈기를.
값은 다르지만, 모두가 합당하다.
모두가 자기 몫의 간지를 가져간다.
나는 장사꾼이다.
그리고 나는 좋은 장사꾼이 되고 싶다.
나는 좋은 장사꾼이다.
왜냐하면 거래를 해서 상대편이 더 이익이 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노동을 절대 싸게 매기지 않는다.
내 시간과 집중은 헐값에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어간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순히 옷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는 부다다당을, 뒤에는 더블크로스를 입는다.
리듬과 철학을 동시에 몸에 두른다.
그 옷을 입는 순간, 하루가 달라진다.
걸음이 달라지고, 어깨가 달라지고, 표정이 바뀐다.
그 변화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다.
57만 3천 원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그 값은 올라가고, 그만큼 의미도 함께 올라간다.
앞 장을 산 사람은 가장 먼저 기준을 세운다.
뒷 장을 산 사람은 가장 마지막에 전설을 세운다.
누구든 손해 보지 않는다.
나는 내 노동을 합당하게 매겼고,
사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얻어간다.
오늘도 나는 고무판을 깎는다.
앞에는 부다다당,
뒤에는 더블크로스.
한 판, 단 12장.
각각의 값은 다르지만, 모두가 존중받는다.
나는 웃는다.
나는 좋은 장사꾼이다.
왜냐하면 거래를 해서 상대편이 더 이익을 얻어가기 때문이다.
부다다당.
그 리듬으로 내 하루는 다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