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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쓴 일단 해봐 Dec 02. 2023

날씨가 기분이 되는 건축주

맑은 날씨를 보내주세요 제발요

골조공사가 시작되고 나니

이제는 계속 재촉하는 스스로를 만난다.

건축주라는 지위(?)는 묘하게도 인간의 간사함을

효과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역할인 것 같다.


1층이 지어지면 2층

2층이 지어지면 3층, 4층, 옥탑이 지어지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게 된다.

철근을 배근하고 거푸집을 세운 다음

벽과 천장(=위층의 바닥)의 콘크리트를 차례대로 타설하고

굳기를 기다린다.

빠르면 열흘에 한 개 층이 올라가는데,

골조공사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바로 비 오는 날씨다.


날씨가 좋으면 오늘도 공사가 진행되겠지 하는 마음에 안심이 된다.

하지만 너무 더운 날,

비가 오는 날은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다.


시간은 건축주의 편이 아니다.

극한의 레버리지,

대출받아 대출 이자를 내고 있는

인생 최대의 리스크를 이겨내고 있기에

시간은 돈이고

금리는 돈이 사라지는 속도다.


그런데..

여름 골조공사는 장마와 태풍을 만날 수밖에 없다.




2023년 7월


50년 만에 세 번째로 비가 많이 왔던,

평년의 2배 강수량과 극한 호우를 남긴 장마가 7월 26일에 끝났다.

하필 골조공사가 시작된 시기에 말이다.

 

2023년 7월 서울 날씨에 대한 예보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시공사를 잘 만난 것이었다.

시공사는 우리가 우여곡절 끝에 늦은 착공을 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장마기간 중에도 하자가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셨다.


건축비의 상당 부분은 인건비인데,

비 예보가 있는 날은 일하시는 분들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비 예보와 실제 비가 오는 것은 다를 수 있으며

비가 온다 하더라도 하루종일 오는 날은 드물다.

위험할 정도로 많이 오거나

콘크리트를 타설 하기로 한 날에 비가 오면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

특히 비 예보가 있었는데 막상 해가 쨍하고 뜨는 그런 날

건축주의 마음은 무너진다.


감사하게도 우리 시공사는

오전에 비가 흩날리다가 잦아드는 타이밍이면

일하시는 분들을 불러(?)내기까지 해주셨다.


어마무시한 비 예보에 비해 골조가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다.




7/1~3 1층 벽, 천장 콘크리트 타설

무엇보다 1층이 완성되었을 때의 벅찬 마음이 컸다.

이제는 '짓고 있는' 건물이 있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걱정도 되었지만,

결국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과거의 내가 준비한 일들은 현재의 과정이 되어가고 있다.



7/17 2층 콘크리트 타설

1층 골조가 올라가고 비계가 설치되자,

속도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본격적인 장마기간에 접어들었다.

시공사가 2층 콘크리트를 붓겠다고 했던 날짜에 5일이 지난 어느 월요일

마침내 2층 타설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착공 후 한 달이 넘게 걸렸다.


2층 천장이 타설되었다. 비계도 함께 높아져간다.


7/26 3층 콘크리트 타설

중간중간 비가 내리는 날, 멈추는 날,

아침에 오다가 낮에 그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시공사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을 해주었다.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서 작업을 하다가 비가 오면 철수를 하기도 했다.

2층 타설은 2주가 걸렸지만 3층 타설은 9일이 걸렸다.

빠른 것도 중요하지만 건물이 튼튼한 것이 우선순위인데

그런 면에서 감리를 잘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늦지 않지만 꼼꼼하게 점검해 주셨다.


골조가 올라간 1,2층을 들어가볼 수 있게 되었다.


애태우며 기다렸던 시간이 언제인가 싶게

3층까지는 1.5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공사를 시작만 하면 편안해질 것 같았던 마음은

이제는 날씨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간다.

매일 수십 번을 날씨를 찾아보며

비 예보가 있더라도 제발 새벽에만 오고 밤에만 와달라고 빌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마음을 어찌할 줄을 몰랐다.

연초부터 이어오던 5시 반의 소박한 미라클모닝마저 끊겼고

혼술의 음주량도 늘어났다.

복잡한 마음을 달래보고자

내일배움카드로 데이터라벨러 강의를 수강해보기도 하고

스토리위너코치 작가 님이 운영하시는 21일 글쓰기 도전에 참여해보기도 했다.


https://brunch.co.kr/@skychang44/547


결과적으로 글쓰기 모임은 나를 다잡아주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꾸준히 뭔가를 해낸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도 했고

브런치를 놓지 말고 이어가야겠다는 결심을 주기도 했다.

(그래놓고 몇 달을 또 띄엄띄엄 썼지만..)


우리는 언제나 작은 노력을 하고는

빠른 보상을 기대한다.

신축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데에는

불확실하고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내 마음 편하고자 조급하게 결과부터 재촉했던 것은 아닐까.


모든 결과에는 그에 걸맞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표지사진: UnsplashIvan Hen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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