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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쓴 일단 해봐 Jun 12. 2021

육아휴직의 하루 루틴 만들기

건강한 하루를 원하십니까


나의 게으름 DNA는 대학시절에 제대로 빛을 발했다.

일주일 내내 기숙사 침대에 엎드려 노트북으로 게임만 하기도 하고,

남들처럼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들기 싫어서

20시간을 활동하고 10시간을 자는, 하루 30시간 루틴으로 한동안 살아보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계획이 필요하긴 하다.

그래야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먹고, 사람답게 살 것이다.


육아휴직으로 주어지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기간 동안 나는 돈을 벌지 않는다.


연봉보다 더 가치 있는 휴직을 보내고 싶었다.


휴직 첫 날, 평일 오전 따릉이를 타고 한강 여행을 했다.


먼저 한 일은 하루를 테스트해보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살아본 결과, 다음과 같이 하루를 세팅했다.


[아이들 등하원]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등원을 시키고,

4시 반에 데리고 온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놀이터 / 장난감도서관 / 마트 / 공원 등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논다.

때로는 은행 ATM 박스가, 때로는 구청 청사가 놀이 공간이 된다.

다만, 시간을 잘 지키지 않으면 내 일상이 무너지므로 예외를 최소화한다.


[청소와 빨래]

처음에는 온 집안을 청소기와 바닥 물걸레질을 해봤다.

하지만 매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소요시간과 청결도를 고려하여 일주일 루틴을 만들었다.

월, 목요일 - 거실
화요일 - 방
수요일 - 특수 위치 (베란다, 창틀, 세탁실, 신발장 등)
금요일 - 화장실 (바닥, 벽 포함)


빨래는 소량이라도 매일 돌리고 널고 개는 것이 성격에 맞는다.

아침 일찍 빨래를 돌려놓고, 아이들을 등원시킨 다음 귀가하여 널면 된다.


갑자기 정전이 된 날 동물원 가기 / 갑자기 눈이 온 날 어린이집 빼먹기 / 그냥 어느 오후 구청 앞마당 연못에 물고기 보러가기


다음은 [요리]

아이들은 아침 식사량이 매우 적다.

어차피 어린이집에 가면 오전 간식을 먹고, 11시 반이면 점심을 먹는다.

2~3시 사이에 간식을 주지만 4시 반에 나를 만나면 배고파한다.


아침 - 시리얼이나 간단한 빵류를 챙겨주는 게 편하고, 적당하다.
저녁 - 4시 반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려면, 늦어도 3시 반부터 그날 저녁 메뉴를 요리해야 한다.
간식 - 아이들을 만나자마자 먹일 과일, 과자 같은 간단한 간식도 준비한다.


처음에는 2시만 넘어도 메뉴를 고민하고 레시피를 보며 서투른 요리를 시작했다.

경험이 쌓이니 메뉴만 정해지면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쌀 씻으면서 메뉴 고민하고, 물 올려놓고 끓기 전에 국이나 찌개를 결정한다.

효율성을 위해 일주일이나 최소 3일 정도 식단을 짜 놓으면 재료 준비가 더 편하다.

(어차피 아이들은 매운걸 못 먹으니 메뉴의 폭이 넓지 않다)


요리에 대해서는 <만개의 레시피><밥타임> 어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만개의 레시피>는 정말 모든 음식의 레시피가 있고,

<밥타임>은 냉장고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입력하면

어떤 음식을 만들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유용한 어플이다.

아이들의 식단이 중복되지 않도록 매일매일 식단을 기록했다.


https://www.10000recipe.com/


밥타임 어플은 지금은 사라졌다.

<슬기로운 요리생활>이 비슷한 기능을 제공한다.


거의 매일, 집을 비워나갔다.


[집 정리]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시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아이들을 생물학적으로 '생존'시키기에도 시간이 빠듯했다.

내가 휴직한 시점은 아이들이 조금은 컸기 때문에

집을 정리할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입지 않는 옷, 그릇, (너무 많은) 책, 환풍기 후드, 주방 물품, 아이들 장난감... 등등

집안 곳곳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싶었다.


팍팍한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휴직을 들어와서인지,

집안만큼은 정돈되고, 차분하게 유지하고 싶었다.

소유를 덜고 공간을 비우면 나의 번뇌도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휴직 초기에 미니멀리스트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육아휴직자로서 가장 도움을 많이 받았던 책은

<멋진 롬 심플한 살림법>이다.

미니멀리스트인 새롬 님의 심플 라이프 생활을 담은 실천서인데,

특히 살림법 체크리스트와 식단 구성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대하는 육아관을 정말 많이 배웠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406364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 <시간표> 어플을 활용했다.

시간대별로 해야 할 일을 핸드폰 화면에 항상 띄워놓고

루틴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유난을 떨었을 수도 있다.

돌이켜보니 뭐 이렇게 혼자 진지했나 부끄럽기도 하다.

직장생활 만 12년 후에 처음 맞는 휴직이고,

육아와 가사, 두 가지를 모두 정말 잘 해내고 싶었다.

아내가 그동안 더 감당했을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져오고 싶었다.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육아휴직은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에게 축복이다.


내가 만든 이 모든 루틴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하루에 3시간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드디어,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까지 해서 얻어낸 3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왔는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


새롬 님께 감사드립니다 :) (출처 : 멋진롬, 심플한 살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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