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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쓴 일단 해봐 Jun 09. 2021

내향인의 직장생활

그 놈의 칼퇴근병 때문에..


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무작정 던진 사표를 진심으로 후회하며

3개월을 놀던 중에,

드디어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동안 면접봤던 회사들 중에 가장 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출근을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퇴근시간이 한참 지나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잘은 모르지만 오늘까지 꼭 해야할 급한 업무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옆자리 사원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혹시 오늘 무슨 일이 있나요?"

"아뇨. 왜요?"

"왜 아무도 퇴근을 하지 않죠?"

"여기 원래 그래요. 언제 제일 화가 나는 줄 아세요?"

"지금보다 더 화가 나나요?"

"빨리 끝내고 집에 가려고 도 안 먹고 일했는데,

 9시에 갑자기 부장님이 일어서시면서 '저녁 뭐 먹을까? 나는 샌드위치' 하고 물어보실 때에요 ㅋㅋ"

"생각만 해도 빡치네요"


생각만 해도 빡치는 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경험할 수 있었다.

짧은 식견으로는 그 날 시급한 업무가 있어보이지 않았다.

나는 틀릴 수 있다. 내 의견일 뿐이다. 내 느낌일 뿐이다.

그런데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영문도 모르는 (공짜) 야근을 한달 가까이 하고나니 행복하지 않았다.

.. 이번 직장은 오래 다녀야되는데..


모난 성격은 고쳐지지 않는다.

6시반쯤 부장님께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다.


"부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계세요."


순간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부장님은 어이가 없는 듯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한 달 넘게 내 인사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수습기간이 끝날 무렵, 나에 대해 채용기준점+1점으로 평가를 매겼다.

(100점 만점에 61점이라는 얘기다.)



나라고 이런 관계가 편하겠는가? 입사한지 한 달도 안 된 경력직 사원이 말이다.

그 때 겨우 서른한살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게 시키는데 난들 어떻게 하겠는가?

이걸 참으면 새로운 회사를 미워하고, 월급 때문에 마지못해 다니고, 그러는 스스로가 답답하고,

끝없는 스트레스와 인내의 여정만이 남아있게 된다.

그에게 도전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회사와 약속한 9-6 근무시간을 지키고 싶은 것 뿐이다.

내 행복에는 중요한 요소니까 말이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다. 6시까지 일하면서 남들만큼, 아니 남들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면 이 행동은 모두에게, 정당하다.

(심지어 엉덩이로 일하는걸 사랑하시는 윗분들에게도)


남아있는 다른 직원들을 존중하면서도

나 스스로 자신있게 행동해야 한다.


결국 나는 그 직장을 좋아하게 되었고, 5년 반을 다녔다. 여전히 그립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매일 홀로 당당하게 인사를 하고 퇴근했다.

이제 다른 직원들은 나를 부러워하며,

한편으로는 걱정하기 시작한다.


"대리님.. 수습기간 끝나면 짤리실 것 같아요."

"설마 무단결근도 아니고 정시퇴근인데 짜르기야 하겠어요?"

"근데 그거 아세요? 대리님 그러고나서 조금씩 퇴근시간이 빨라지고 있어요."

"어후 저는 뭘 바꾸고 싶어서가 아니라 제가 죽겠어서 그러는거에요."


제한된(?) 시간 동안 주어진 일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할지 늘 고민했다.

칼퇴근을 해도 충분히 이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증명하고 싶었다.


반년이 걸렸다.

사무국장님이 연말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주셨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에, 우리 사무실은

모두가 6시에 퇴근하는 사무실이 되었다.




사람들의 대화를 보면 신기하다.

어떻게 저렇게 하고 싶은 말, 할 말이 많을까?

가끔 빠져들듯이 홈쇼핑을 쳐다본다.

티셔츠 한 장으로 한 시간을 말할 수 있는 쇼호스트의 능력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보기와는 다르게, 나는 내향적인 성격이고, 말이 많지 않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다.

내가 외향적이고 요령있는 센스쟁이였다면

눈치를 살살 보아가며 부장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조금씩 조금씩 퇴근을 앞당기거나 최소한 미움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투박하지만 어쩔 수 없다. 타고난 성격을 바꾸고 싶어서 무던히 노력했지만

결국 이게 내 본 모습이라는 걸 확신하는 결과만 나올 뿐이었다.

회사에 최소한 보장받고 싶은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내가 만난 여러 회사들은 예외없이 시간외근무를 좋아했다.

겉으로는 강요하지 않더라도,

직원이 남아서 일하는 모습을 대견해했다.

직원들은 한탄하면서도 어쩔수없이 남아있는다.


내 인생에 대한 예의


억지로 원치않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가 미워서도, 누구와 싸우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이건, 내 문제였다.


다만

남들보다 짧게 일하려니 언제나 효율성 싸움이었다.

그래서 내게 회사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일만 하기에도 빠듯한 곳이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일상 잡담 이야기 꽃을 피우거나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개인적으로 술도 한잔 하고

든든한 우군을 만들고 등등

나라고 왜 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할 줄도 모를 뿐더러 할 시간이 없다.

6시 이후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시간은 내 것이기도, 우리 가족의 것이기도 하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고자 돈을 벌고,

간은 최대한 덜 빼앗기는 인생을 살고자

대한민국 남자 중에 가장 흔한 ISTJ를 타고나서도

이렇게 내향적인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그놈의 칼퇴근병 때문에!


https://youtu.be/aNPuw4XAiOA

칼퇴근 드라마도 있었다 <직장의 신>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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