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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쓴 일단 해봐 Jun 14. 2021

받아줄 사람을 생각 못했네

내 마음 말고 부동산...


투자를 위해 매수한 물건은 훗날 매도를 해야 수익이 된다.

실제로 존재해야 하니까, 그래서 수익을 "실현"한다고 하나보다.


매도를 위해 부동산에 전화를 건다.

그때마다 내가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은...


"안녕하세요, OO단지 OO동 OO호 보유하고 있습니다. 매도하려고 전화드렸습니다."

"네 얼마에 내놓으실 건데요?"

"OOOO원에 내놓으려고 합니다, 사장님. 매도가 잘 될까요? 잘 부탁드립니다."

"요즘 상황이 이래서 금방은 안 될 것 같아요. 해보기는 할게요~"


해보기는 할게요


흔히들 '물린다'고 한다.

부동산 사장님의 이 반응은 내가 물렸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주신다는 뜻인 줄만 알았다.

(물론 그 말도 맞다고 믿는다)


투자를 한 물건이 얼마의 가치가 있든

내가 원하는 시기에 사갈 사람이 없다면

자산가치만 있고 현금(=돈)은 없는 상태가 된다.


첫 투자를 용감하게 시작하고 나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부동산 지식을 계속 써먹고 싶었다.


사람은 어설프게 알 때 가장 확신이 강하다.


나도 어엿한 투자자가 된 것 같았다.

교통호재, 역세권, 학군, 매매에 필요한 대출, 세금 등등

마치 내가 남들보다 많이 아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착각이다)

1등 물건은 못 골라도, 잃지 않을 물건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다)

(사실 어떤 분야에서 경험을 쌓던 이 시기가 가장 재미는 있는 것 같다.)


어설픈 지식으로 없는 돈을 끌어모아

추가 투자를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갑자기 정부에서 추가 대책을 발표하며 시장은 일순간 얼어붙었다.

어쨌든 나는 매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내놓은 물건은 팔리지 않았다.




깊이 생각해봤어야 한다.

내가 내놓은 물건을 과연 누가 살 것인가?


매도하고 싶은 부동산을 받아줄 사람은 딱 2가지 밖에 없다.

투자자실수요자이다.


남들이 다 살 때 샀다. 그래서 비싸게 샀고,

남들이 다 팔고 싶어 할 때에 나도 팔려고 내놓았다.

그래서 안 팔리는 것이다.


투자자이 실수요자인 그 누군가가

받아줄만한 물건을,

받아줄만한 타이밍에 내놓아야 했던 것이다.

내가 보유한 부동산이 3억원의 가치가 있어도,

아무도 사가지 않는다면 그때도 똑같이 3억원일까?


아니다. 왜냐면 급하게 팔아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놓는다 → 안 팔린다 → 시간이 간다 → 어떡하지?

버티던 누군가 2억 8천만원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끝내 안 팔리면 대출 이자만 내는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가격이 변화하고, 시세가 생기고 시장이 움직이는 것을

매도의 경험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왜 꼭 겪어봐야만 아는걸까..


수개월 동안 예상치 못한 자금의 경색(?)을 겪으며

몇 가지를 배웠다.


① 그래도 로열동 로열층 RR 물건은 팔린다. 싸다고 팔리는 건 아니다.

② 시간이 있는 쪽이 유리하다

③ 수익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①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물건을 사야겠다. 왜냐면 훗날 나의 고객(?)도 그걸 산다.

② 나 자신을 시간이 없는 급한 상황으로 만들지 말아야겠다.

③ 같은 수익이라면 더 빠르게, 같은 기간이라면 더 많은 수익을 목표로 해야겠다.


그래도 한 가지.

비록 초보 투자자였지만, 그리고 힘들었지만

내 물건이 당장 팔리지 않는다고 발을 동동 구르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그런 스스로가 매우 대견했다.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없어서 그렇지,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매도에 성공했다.

언제 사고, 언제 팔지, 목표 수익은 얼마인지

목표와 계획이 명확하지 않다면 남들 하는 대로 휩쓸려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수는 돈만 있으면 할 수 있지만

매도는 상대방이 필요하다.


투자자들이 그렇게 사람들의 심리를 공부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투자 격언(feat.선당후곰, 청무피사) 중에


"매수는 타이밍이지만 매도는 예술이다"


라고 하나보다.

그래, 좋은 경험 했으니 잘 배웠으면 됐다!



<참고>

오해를 피하자면

'물렸다' 는 그 물건이 나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순전히 내 입장에서 매도를 하고 싶을 때 현금화하지 못한다는 뜻인데,

사람마다 매도의 이유와 원하는 시기, 금액은 다르다.

나에게 좋은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서로가 만족하는 거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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