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미쓴 일단 해봐 Jun 15. 2021

체육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니야 새싹반 친구 아빠야


육아휴직의 공식 복장은 트레이닝복(=운동복, 츄리닝)이다.

패알못인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브랜드는 이제 나이키가 되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난 뒤에는

육아-집안일-운동 이 세 가지가 대부분의 시간을 채우고 있으므로

다른 옷을 입을 일이 없다.

내 복장은 언제나 계절별 운동복과 간식/물티슈/육아용품이 들은 가방뿐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외출용과 실내용, 취침용 옷은 엄격히 구분되고 있다.)




같은 직장인으로서

어린이집 선생님의 부탁은 정말 거절하기 어렵다.

내 자식 둘을 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4세반은 선생님 두 분이 14명을,

5세반은 선생님 혼자서 15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시지 않은가.

(심지어 그중에 내 아이가 포함되어 있다!)


사고 안 나게 돌보고, 데리고 놀아주고, 식사/간식 챙겨 먹이기,

게다가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사진 찍어서 키즈노트에 올리고, 아마 내부 보고도 있겠지...

이걸 어떻게 다 하시는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항상 감사하고 또 감사한 분들이다.

늘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말로라도 고맙다고 표현하면,

예상보다 훨씬, 아주 많이 좋아하시는 걸 보게 된다.


아이들을 등원시킨 어느 아침,

갑자기 선생님께서 나를 붙잡으며 물으신다.

분명 저 표정은 나한테 뭔가를 부탁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버님, 혹시 다음 주 수요일에 시간 괜찮으세요?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다.


"선생님.. 저 지난주에도.."

"하하하^^ 아버님 이번은 1시간도 안 걸려요 잠시만 와주시면 돼요^^

 정말 와주실 분 찾기가 너무너무 어려워서 그래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이렇게 나는 다양한 어린이집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체험활동

급식실 참관

물놀이

학부모교육(머릿수채우기)

체육대회 등등등


다섯 타임으로 나누어 어린이집 아이들 70명과 놀았다. 꼬박 이틀을 앓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나를 "체육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동네를 지나가다가 보면 먼저 인사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체육선생님이다!! 안녕하세요~!"

"안녕~ 엄마랑 놀러 가니? 잘 다녀와^^"

일단 어린이집에서 자주 얼굴을 볼 수 있고,

만나면 조금은 놀아주며,

진짜 체육선생님처럼 늘 운동복 복장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막히기 전까지는)

어린이집에는 생각보다 행사와 프로그램이 많았다.

아마도 나는 어린이집에서 파악한 <집에 있는 아빠> POOL이 된 것 같다.

해보지 못한 경험이라 재밌다.


'이번엔 누구 엄마/아빠한테 부탁드릴까?'

'OO 아빠 어때?'

'지난주에도 왔잖아 ㅋㅋ'

'에이 뭐 어때 휴직 중이라 집에 있잖아~ㅋㅋㅋ'


선생님들끼리 이런 대화를 하고 있을 상황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운동이나 집안일, 개인적인 일을 할 시간은 조금 줄어들지만

힘들게 일하는 선생님들을 도와드릴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어린이집에 나타난 아빠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이벤트가 된다.

아이들은 정말 너무나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기꺼이.


체육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의 작은 오해(?)가 귀엽고 즐겁다는 것은

내 마음의 여유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을까.

또, 우리 아이들에게는 추억거리를 만들어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


휴직의 하루는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매일 새롭다.

작가의 이전글 받아줄 사람을 생각 못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