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아니야 새싹반 친구 아빠야
육아휴직의 공식 복장은 트레이닝복(=운동복, 츄리닝)이다.
패알못인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브랜드는 이제 나이키가 되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난 뒤에는
육아-집안일-운동 이 세 가지가 대부분의 시간을 채우고 있으므로
다른 옷을 입을 일이 없다.
내 복장은 언제나 계절별 운동복과 간식/물티슈/육아용품이 들은 가방뿐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외출용과 실내용, 취침용 옷은 엄격히 구분되고 있다.)
같은 직장인으로서
어린이집 선생님의 부탁은 정말 거절하기 어렵다.
내 자식 둘을 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4세반은 선생님 두 분이 14명을,
5세반은 선생님 혼자서 15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시지 않은가.
(심지어 그중에 내 아이가 포함되어 있다!)
사고 안 나게 돌보고, 데리고 놀아주고, 식사/간식 챙겨 먹이기,
게다가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사진 찍어서 키즈노트에 올리고, 아마 내부 보고도 있겠지...
이걸 어떻게 다 하시는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항상 감사하고 또 감사한 분들이다.
늘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말로라도 고맙다고 표현하면,
예상보다 훨씬, 아주 많이 좋아하시는 걸 보게 된다.
아이들을 등원시킨 어느 아침,
갑자기 선생님께서 나를 붙잡으며 물으신다.
분명 저 표정은 나한테 뭔가를 부탁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버님, 혹시 다음 주 수요일에 시간 괜찮으세요?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다.
"선생님.. 저 지난주에도.."
"하하하^^ 아버님 이번은 1시간도 안 걸려요 잠시만 와주시면 돼요^^
정말 와주실 분 찾기가 너무너무 어려워서 그래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이렇게 나는 다양한 어린이집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체험활동
급식실 참관
물놀이
학부모교육(머릿수채우기)
체육대회 등등등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나를 "체육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동네를 지나가다가 보면 먼저 인사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체육선생님이다!! 안녕하세요~!"
"안녕~ 엄마랑 놀러 가니? 잘 다녀와^^"
일단 어린이집에서 자주 얼굴을 볼 수 있고,
만나면 조금은 놀아주며,
진짜 체육선생님처럼 늘 운동복 복장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막히기 전까지는)
어린이집에는 생각보다 행사와 프로그램이 많았다.
아마도 나는 어린이집에서 파악한 <집에 있는 아빠> POOL이 된 것 같다.
해보지 못한 경험이라 재밌다.
'이번엔 누구 엄마/아빠한테 부탁드릴까?'
'OO 아빠 어때?'
'지난주에도 왔잖아 ㅋㅋ'
'에이 뭐 어때 휴직 중이라 집에 있잖아~ㅋㅋㅋ'
선생님들끼리 이런 대화를 하고 있을 상황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운동이나 집안일, 개인적인 일을 할 시간은 조금 줄어들지만
힘들게 일하는 선생님들을 도와드릴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어린이집에 나타난 아빠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이벤트가 된다.
아이들은 정말 너무나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기꺼이.
체육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의 작은 오해(?)가 귀엽고 즐겁다는 것은
내 마음의 여유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을까.
또, 우리 아이들에게는 추억거리를 만들어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
휴직의 하루는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매일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