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미쓴 일단 해봐 Jan 26. 2023

내향적인 직장인의 방해받지 않는 시간

나만의 시간 확보하기 (D-705)

17년째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감사한 것은 규칙적인 생활습관, 가정을 꾸려나갈 월급과 안정감, 나의 가치에 대한 인정 등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회사 안에서는 수동적으로 주어진 일을 해야 하고, 월급을 받는 대신 내 시간이 사라졌으며,

한정된 자원인 나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했다.


그래서 어차피 언젠가 찾아올 은퇴라는 주제에 대해

조금 앞당겨 생각해 보자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쉬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만약 언젠가 은퇴를 하고 나면 그리 오래지 않아 무료함이 찾아올 것이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은퇴가 아니라,

경제적인 걱정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은퇴가 되기를 꿈꾼다.




나름의 마스터플랜을 세워보았다.

무엇이 나와 아내를 행복하게 하는 조건들인지를 물었고,

우리 가족에게 한 달에 필요한 돈은 얼마인지 확인했다.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과 거주지 등 은퇴 이후의 삶도 상상해 보았다.


https://brunch.co.kr/@may1st/58


이제 본격적인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디에서 시간을 가져올까?

먼저 일상을 돌아보고, 의미 없이 사라지는 시간들을 붙잡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출퇴근 시간이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이동하는 내내 스마트폰으로 스포츠 뉴스를 읽거나,

OTT로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재미있지만,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출퇴근 시간을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시간으로 바꿨다.

걸으면서 들을 수 있는 재테크, 부동산, 자기개발 유튜브 채널을 찾고

듣고 생각하면서 그 시간을 보냈다.

오디오북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출처 : unsplash


두 번째는 점심시간이었다.

지금의 회사에 다닌 지 6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원활한 적응과 무난한 관계를 위해서 열심히 점심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스케줄러는 채워져 갔지만 어느 순간,

내가 점심시간마저도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부분은 가십거리와 회사 내의 뜬소문으로 시간을 때웠다.

나는 소문에 밝지 않고 관심도 없어서 해 줄 이야기가 없었다.

칼퇴를 위해 업무시간에는 일에만 집중하기에도 바빴고,

퇴근해서는 두 아이의 육아와 집안일을 하다가 뻗는다.
그러니 공감할 주제가 없었다.

한편 나이 차이가 나는 후배들은 나를 어려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뭔가 노력을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이상했다.


점심시간은 쉬기 위해 있는 시간이 아니었던가?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는 걸까?

소중한 점심시간이 스트레스가 되어갔다.

오늘은 또 누구하고 점심을 먹어야 하나, 이제는 점심 메이트를 찾는 것이 일이 되어버렸고,

타인에게 무엇을 증명하려고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말 그대로,

모든 관계가 노동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대사를 정말 좋아한다.)


무엇보다 가장 아까운 것은 하루 한 시간,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구내식당에서 얼른 끼니를 해치우고 무작정 회사 주변을 걸어 다녔다.

광화문 인근에는 다행히도 갈 곳이 정말 많았다.

마음이 복잡한 날에는 명상음악을 듣거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마음이 괜찮은 때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을 듣는다.

경제적 자유를 얻은 사람들, 은퇴를 한 사람들,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삶에서 적용해 볼 만한 내용을 찾는다.


몇 번의 소화불량으로 고생을 한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1일 1식에 도전해 보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마음 맞는 사람과의 약속이 있거나

참석해야 하는 점심 자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점심 대신 걷기를 택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와 시간 보내기에 에너지를 빼앗기는

내향형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점점 더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혼자 먹는 점심, 혼자 걷는 점심을 택한 이후에는

점심시간이 즐겁고 기다려진다.


무엇보다 이 시간의 장점은

나 자신과 대화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무엇이 하고 싶은지, 어떤 미래의 삶을 살고 싶은지를 묻는다.

회사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도 이렇게 점점 구체화되어가고 있다.


물론, 가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 보았던, 미세먼지로 인한 이민을 결심하고 마흔 살에 은퇴한

<캐나다 홍작가>님이 출연하신 유튜브를 보다가 얻은 뜻밖의 공감을 소개하고 싶다.


자유로움과 외로움은 하나의 세트이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인정하게 되었다는 인터뷰였다.

조금 다른 생각을 하며 내 색깔로 일상을 칠 해가다 보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댓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m60QBCK0ajE&t=485s

캐나다 홍작가님의 인터뷰
매거진의 이전글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