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이었다.
인생에 큰 변수가 별로 없었다.
웬만한 건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이루어졌다.
대학 졸업 전부터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 10년을 다녔고,
비혼주의자라며 떠들고 다녔지만(친구들은 믿지 않았다고 한다), 든든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집주인의 갑질에 서러워하다가도, 그걸 에너지 삼아 내집 마련을 했다.
임신도 나만 결심하면 될 줄 알았다.
오만이었다.
취업도, 결혼도, 내집 마련도,
결심을 하면 결과가 있었다.
병원에서 낮은 AMH수치를 들어도,
시험관을 권유받아도, 마음 한 구석엔
"그래도 노력하면... 자연 임신이 되지 않을까?"
근거 없는 기대와 자신감이 지배하고 있었다.
오만이었다.
나는 계획형 인간이다. J인게 좋았다.
계획 없이 사는 P보다는 계획을 잘 지키는 J가 사회적으로 더 괜찮아 보이니까.
역시 오만이었다.
J는 계획을 잘 지켜서 J가 아니었다.
계획 따위가 무너졌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에 따라 J와 P가 판가름나는 것이다.
대문자 J인 나는 계획이 조금만 틀어져도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생각해보면 한 생명을 인간답게 키운다는 건
변수 더하기 변수, 아니 변수 곱하기 변수가 아닐까.
살면서 내 뜻대로 되는 사람 한 명 없는데,
심지어 나조차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있는데,
내 아이도 내 맘대로 되지 않겠지.
그 애는 분명 거대한 변수덩어리겠지.
신이 있다면, 이런 나의 마음가짐을 고쳐먹으라고 시간을 벌어주는 걸까.
변수에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또 부여잡으며 수련하라는 큰 뜻인걸까.
한 생명을 맞이한다는 건 단순한 결심이 아니겠지.
인생은 변수투성이고, 나에게 오고 있는 너는 내 인생 최대의 변수일 테니까.
그러니까 다시 마음을 다잡아본다.
계획이 좀 틀어져도, 변수가 생겨도 그냥 받아들이는 마음을 배워본다.
고맙다 아기야, 너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에게 배움을 주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