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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Feb 10. 2022

[양평 살이] 1. 양평 걸어보기

우리동네, 걸어보자!


양평에 거주한 지 6년 차다. 나름 양평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고, 다녀볼 만한 곳들도 많이 다녀보았다고 생각했다. 그간 이곳저곳 구석구석을 다녀보았는데, 주로 차를 이용했었다. 양평은 마트나 병원을 가려고 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란 쉽지 않다. 자차가 없으면 어디든 움직이기 쉽지 않은 시골 같지 않은 시골이다. 오래 묵혀두었던 장롱면허를 꺼내서라도 차를 움직이게 하는 곳이 바로 양평이다. 나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운전면허를 양평에 이사 온 후 아기를 낳고 나서 취득했다. 아기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는 병원을 가는 게 너무 힘들었던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필요한 곳들, 가보고 싶은 곳들은 주로 차를 이용하다 보니 정작 양평의 길들을 제대로 걸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사실 그럴 필요가 별로 없었다. 양평을 떠올리면 물 좋고 공기 좋은 한적한 도시로 자연을 마음껏 누리며 살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저 창문 밖으로 바라만 보는 것으로, 카페에 앉아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두 다리로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면서 나의 체력을 소진해가며 누릴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에 가까이 사는 지인들과 함께 '만보 걷기'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운동은 언제 해보았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나였지만 '그래, 이렇게 내 몸을 방치해둘 수는 없어!'라는 생각에 고민 고민하다 같이 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진행 방법은 각자 만보를 걷고 밴드에 인증글을 올리면 되는 것이었다. 얼마나 자주 만보를 걸어서 인증을 하는지는 오롯이 본인에게 달려 있는 프로젝트였다. 걷지 않는다고 해서 페널티는 따로 없었다. 회비도 만원씩 걷어서 한 달간 만보를 꾸준히 걸어보자고 각자 다짐했다.


처음엔 그냥 근처 동네, 놀이터, 지하주차장, 계단 오르내리기 등을 했다. '만보'를 걷는 것이 중요했지 어디를 걷는 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밴드에 인증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다른 사람들이 걷는 코스가 좋아 보였다. 그리고 그 코스를 따라 걷기도 하고 다른 걷기 코스를 개척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을 걸어보며 나는 익숙하지만 또 다른 새로운 양평을 만났다. 양평은 걸어도 걸어도 새로운 길이 계속 나오는 신비한 곳이었다. 그리고 강을 따라 이어지는 강 양쪽의 산책로들은 정말 잘 정돈되어 있었고 걸을 때마다 발걸음이 신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양평에 살면서 이렇게 좋은 복지를 나는 누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양평에 살았던 6년간의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기록할 생각으로 사진을 찍었던 것이 아니라서(원래도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하지만), 사진에 잘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다음의 사진을 통해서라도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과 양평을 걷는 재미와 기쁨에 대해 나누고 싶다.  


양평 강상 산책로 겸 자전거 길 


강상면에는 체육공원이 크게 있는데, 축구장 쪽 체육공원의 위쪽에는 자전거도로 겸 산책로가 있다. 남한강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그 길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아서 걸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이번 걷기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걷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엔 그 길의 끝까지 가보자고 호기심을 내어 출발했다. 





출발지점은 파크골프장 위쪽 산책로였는데, 거기부터 강상 체육공원 윗길 산책로 맨 끝까지 걸어보았다. 약 2.5 km 정도의 길이었다. 겨울이라서 푸릇푸릇하거나 예쁜 꽃이 핀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 겨울의 강가와 나무의 모습도 정말 아름다웠다. 걸으면 걸을수록 발걸음에 신이 났다. 운동해본지도 오래이고 만보를 걸어보는 것도 처음이라 숨차고 걷기 싫고 힘이 들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앞선던 출발과는 전혀 달랐다. 추운 겨울에 강이 얼어붙은 것도, 그 얼어붙은 강 위로 눈이 쌓여있는 모습이 꽤나 예뻐 보였다. 걷다 보니 매섭게만 느껴졌던 겨울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나무들도 옷을 다 벗고 있고, 잔디들도 마른 갈색을 보여서 황량하게만 느껴질 줄 알았던 겨울의 산책이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강물은 푸르렀고 하늘은 그러데이션을 입혀 놓은 듯 흰색부터 짙은 파란색까지 선명한 색감을 뽐냈다. 


양평 강상 산책로에서 바라본 겨울 남한강 모습 



산책로의 끝 지점



산책로는 한 주택단지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끝이 났다. 어디가 끝인지 확인했으니 호기심은 충족되었다.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 늘 궁금해하기만 하고 걸어볼 생각은 못했는데, 길의 끝까지 가보아 호기심을 해결했다는 약간의 성취감도 맛볼 수 있었다. 






작은 개울의 살얼음

가는 길에 천천히 자연감상을 했으니, 돌아가는 길은 보다 빠르게 걸었다. 걸으면서 안 것인데, 내가 걷는 길에서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도 많았는데, 그곳엔 내가 걷는 길과 똑같은 산책로가 있었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도 보였다. 돌아가는 길은 아래의 산책로를 걸어볼까 했는데, 다음에 와서 걸어보자 하는 마음에, 왔던 길 그대로 되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는 작은 개울이 언 것도 볼 수 있었다. 개울에 살 얼음이 끼어서 가운데로 물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발로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살얼음이었는데, 얼음 결정이 다 보일만한 저 살얼음을 깨는 것은 아름다운 작품을 하나 망치는 느낌이 들어 장난은 그만두었다. 



돌아오는 길은 힘들었다. 왕복 5km 정도를 걷게 된 셈이니, 힘들법하지 않은가? 집에 돌아오니 다리가 살짝 후들후들 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안 하던 운동을 하다 보니 걷고 돌아와서는 한참은 널브러져서 쉬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도 걸었다는 뿌듯함, 만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과 더불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한 즐거움이 어제와 같을 것만 같은 오늘의 하루를 다르게 만들어주었다. 단순하게 그냥 걷는 것뿐이었는데, 생각보다는 나의 일상의 여러 부분에 변화를 주게 되었다. 6년이나 모르고 지냈던 것들을 알고 느끼고 경험하게 해 준 '걷기'. 잘 걸을 수 있도록 길을 가꾸어 준 양평군의 복지를 이제야 누리다니. 아니, 이제라도 누리게 되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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