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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Jan 17. 2023

성적 그리고 첫 번째 방학

전업주부의 박사과정 도전기 #5

성적이 나왔다(두둥!!).


2과목 중 한 과목은 진짜 열심히, 다른 과목은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성적은 반대로 나왔다. 그냥 열심히 한 과목은 A+, 진짜 열심히 한 과목은 A-가 나왔다. 그런데 다행이다 싶다. 왜냐면, A+맞은 과목이 내 논자시(논문자격시험) 대상 과목이어서 이제 이 과목은 논자시 패스가 가능하다. 내 성적을 같이 확인한 남편은 A+을 맞은 나를 굉장히 의외의 눈으로 바라보며, '어떻게 당신이 A+을 맞았느냐'라고 묻는 식의 말을 했다. 뭔가 그렇게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반응이었다. 그동안의 나를 무시당한 느낌이었지만, '봐봐, 내가 이 정도야!'라는 식의 답을 해주었다. 그간 전업주부로서 내가 했던 일들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학생의 역할까지 나름 괜찮게 해낸 나에게, 나도 박수를 주고 싶은 그런 첫 학기이다. 수고했다 나 자신. 


나 자신을 격려함과 동시에 가족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나를 위해 온 가족이 고군분투했다. 우리 아이들은 새로운 돌봄 이모님에게 적응해야 했고, 우리 남편은 목요일마다 저녁약속은 만들 수 없었다. 온 가족이 나에게 해준 배려와 나름의 고생 덕분에 내가 학교 갈 수 있었다. 그러니, 나도 열심히 해야지. 앞으로도 그 수고들이 헛되지 않게, 잘 해내야지! 


나의 방학이 시작되고 마지막 과제제출까지 마무리 짓고 나니, 아이들의 방학이 차례로 시작되었다. 나의 아이들은 서로 다른 어른이 집에 다니고 있어서(이제 곧 같은 어린이집으로 둘째가 옮길 예정), 두 명의 방학기간을 합치니 거의 2주가 되었다. 그런데 방학이 먼저 시작된 둘째를 보니, 첫째가 자기도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 하여 첫째의 방학은 더 빠르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또 아이들 방학을 치러내고 나도 온전히 방학을 맞았다. 


방학에 한 일 첫 번째 - 글쓰기 능력 향상하기 

학교에서 오는 메일들을 수시로 확인해 보면, 다양한 교육서비스가 비대면이면서 무상으로 제공된다. 나는 기초교육원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능력향상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6주간 매주 A4 2매 이상의 글을 써서 제출하면 매주 비대면으로 30분 정도의 피드백을 받는 프로그램이다. 어른이 되고 난 후, 누군가 나의 글을 점검해 주고 피드백을 해주는 일이 드문데, 좋은 기회를 누리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 


방학에 한 일 두 번째 - 나의 논문메이트와 고용패널조사 학술대회 참여하기. 

나에게는 고맙고도 소중한 논문메이트가 있다. 이 친구와 지난 학기 내내 하고 있던 연구가 있었는데, 결괏값이 도저히 안 나와서 그 연구는.. 흘려보냈다. 그리고 다음 연구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고용패널조사 학술대회에 논문을 한편 내보기로 했다. 아직 시작단계이지만, 방학이 끝나기 전에는 한편 완성되어 있으면 좋겠다. 


방학에 한 일 세 번째 - 주 2회 연구실 출근하기. 

첫 학기에 주 1회 학교 가는 것을 시작했다면, 이번엔 주 2회 연구실에 출근하기로 했다. 지난번 도전기에 교수님께 프로젝트 참여와 관련하여 의사를 밝혔다고 했는데, 연구실 통해서 연락이 왔다. 주 2회 출근이 가능하다고 내가 말했지만, 어느 정도까지 얼마나 가능할지는 다녀봐야 알 것 같다. 그래도 아이들이 이 만큼 크고, 일주일에 2번만 출근하고, 4시면 퇴근가능하며, 나머지는 재택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주 2회씩이나 학교에 간다고 생각하지만, 지나 보면 겨우 주 2회 가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올 것이다. 첫 학기 학교 가는 것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주 2회 연구실 출근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도 정 여건과 상황이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 마음 편히 가지고 우선 해보자. 



**덧, 


남편이 내게 '엄마가 아이들 곁에 붙어서 같이 있는 것이 투자라는 생각이 들어'라는 말을 했다. 막상 내가 학교에 주 2회 나가야 한다고 하니,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던 것 같다. 나도 남편의 말에 동의한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나는 9 to 6의 일을 시작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 곁에서 힘들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나의 아이들도 안정적이고 편안한 시간들을 보내왔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6살, 4살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슬슬 나의 인생도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할 때임을 나는 직감한다. 시작하다가 쉬어가더라도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너무 늦어버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충분히 아이들의 정서가 안정되고 상황과 환경을 편안하게 인지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커서 내 손길이 조금 덜 필요해졌을 때,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렇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마음도 몸도 모두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에게 고맙고, 불안하지만 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 준 남편에게도 고맙다. 그리고 용기를 낸 나 자신에게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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