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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Feb 08. 2023

과거의 악몽이 다시 기억났다.

전업주부의 박사과정 도전기 #6

모든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기 마련인것일까. 지옥과 같고 노예와 다름없었던 나의 석사과정의 시절을 나는 까맣게 잊었을 뿐 아니라, 그 시간들이 내게 참 유익했다고만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대학원에 그리고 연구실로 컴백 했을 때, 모두들 내게 '왜 돌아왔느냐'고 물었었다. 여러 사람이, 여러번 같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누군가는 나에게 미쳤다고까지 했다. 다 알면서 어떻게 돌아올 수 있냐는 말들이었다. 나는 이 말들을 용기 있는 나의 결정에 대한 격려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나는 제 발로 다시 지옥으로, 노예의 삶으로 걸어들어왔다는 것을 연구실 출근 첫날에 바로 깨달았다. 


연구실의 공식적인 근무시간은 10시-4시였다. 나는 아이들을 어린이집 문이 열리자마자 보내놓고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몇 번이고 갈아타고 마지막으로 버스까지 5번을 환승하고 연구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4시에 끝나면 바로 또 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 시댁에서 아이들을 찾아 집에 7시 안에는 데려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모든 것이 무산되었다. 


나의 퇴근은 4시인데, 4시 반에 있는 주간회의에 참석하라는 교수님 말씀이 떨어졌다. 다행이 줌으로 진행되는 회의여서 나는 연구실에 양해를 구하고 조금 일찍 나서서 집에 가서 참석한다고 했다. 그런데 회의시간은 다가오고 나는 집에 도착하지 못했다. 급히 가던 길에서 내려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4시반에 시작한 회의는 7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카페에서 집까지는 또 40분 거리가 남았다. 결국 남편이 퇴근하고 아이들을 데려왔고 나는 8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했다. 워라벨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약간 있긴 했지만, 첫날 부터 이럴 줄이야.... 아이들 데리러 가야하는 내 속은 타들어가니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매 분 매 초가 힘겨웠다. 그리고 나의 석사시절이 생생히 기억났다. 불호령이 떨어지던 회의시간, 구박과 타박이 난무하던 그 시간이 떠올랐다. 나야 첫 날이라서 보고할 안건이 없었지만, 보고용 자료를 준비하려 회의 전에는 식음을 폐하고 미친듯이 컴퓨터 앞에서 다리를 덜덜 떨며 회의를 준비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나는 왜 다시 연구실에 발을 들여놓았을까, 나의 이 선택은 어떤 참담한 결과를 불러올까.. 온갖 걱정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나는 휴학을 감수하더라도 천천히 이 과정을 마치고 싶었는데, 휴학이 아니라 자퇴에 가까운 결정이 내려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파트로 수업만 듣고 과제만 하며 대학원 과정을 수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수업만 들어서는 내 안에 남을 수 있는 자양분이 많지 않다. 연구실 일에 참여하여 프로젝트도 하고 연구실에 진행하는 연구들에도 참여해야 내게 남을 수 있는 유익한 점이 많다. 그리고 졸업도 그 이후의 진로도 보다 확실하게 다질 수 있는 무기는 연구실에서 장착할 수 있다. 나는 직업이 없고 아이만 돌보니, 학교 수업만 들으며 왔다갔다 하면, 학위는 받아도 그 이후가 보장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기에 나는 연구실 생활을 자처하고 반 풀타임, 반 파트처럼 지내보려는 것이 나의 작정이었다. 그런데 교수님 생각은 다르신 것도 같다. 나를 반 풀타임이 아니라, 완전한 풀타임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만들고자 하시는 것 같다. 나는 어떤 포지셔닝을 취해야 하는 것일까. 아주 오만가지 생각이 들게하는 연구실 출근 첫날이다. 


집에와서 나는 또 생각한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평화로운 일상들, 사실 내가 집에 있고 아이들과 집을 돌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 나날들. 별 다른 걱정도 고민도 없이 아이들과 매일 먹고 자며 하하호호 웃는 이 삶을 내가 내 손으로 내던지고 나는 과연 좋은 선택을 한 것일까. 왜 나는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상을 벗어나 힘겹고 어려운 길을 자처해서 걸어가려는 것일까. 나만 힘들고 어려운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남편도 시댁도 친정도 모두 우려하고 걱정하며 내가 져야 할 짐을 모두 분담해야하는 이런 상황을 나는 왜 만든 것일까. 내가 하려는 이 박사과정이 그 만큼의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일까. 수 없이 고민하고 고민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하고 어려워도 지금은 포기할 수가 없다. 나는 하고싶다. 고생이어도 힘들어도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 커리어를 포기할 수가 없다. 그냥 엄마와 아내로만 사는 삶은 내가 내 자신이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 정녕 이게 고통 그 자체여서 가족에게 피해만 간다 하면, 그때는 그만 두겠지만, 모두가 숨쉬고 살 수 있는 만큼, 버티고 버틸 수 있는 만큼이라면 갈 수 있을 때 까지는 걸어보고 나아가보리라. 이제 첫 날인데, 2학기 3학기 4학기 수료 그 이후 졸업까지 하나씩 하나씩 해보는데 까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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