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박사과정 도전기 #7
개강을 했다. 서른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개강'이라는 단어가 익숙하다는 것도 생소한 일일 텐데, 그 개강이 심지어 설렌다. 배움에는 다 때가 있다고 하는데,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그득그득 드는 지금이 나는 공부를 할 때인가 보다. 3월 2일 개강 첫날, 나는 가벼운 발걸음, 설레는 마음, 옅게 띄운 미소와 함께 학교로 갔다.
이번 학기에도 다행히, 내 수업은 목요일에 몰아졌다. 비록 저녁 9시 반에 끝나는 일정이긴 하나, 일주일 단 하루만 늦게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참 다행이다. 저녁에 내 손으로 직접 아이들을 챙길 수 없는 날일 일주일에 단 하루라는 것은 내 마음의 짐과 부담을 그만큼 적게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니, 참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새 학기를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아이들도 새 학기를 시작했다. 둘째는 언니와 같은 어린이집으로 옮기면서 적응이 시작되었는데, 거의 2주간의 적응기간 주어졌다. 첫날은 나도 학교에 가야 해서 남편이 연차를 내고 아이와 함께 30분간 어린이집 생활을 했다. 나를 종종 찾았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아빠와 함께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잘 지냈던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것이 물리적인 거리도 멀고 학업과 연구에 시간도 들어가기 때문에 내게 여러모로 부담이 되는 것은 맞다. 그런데 내 마음과 생각은 학교 다니기 전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밝아지고 무엇보다 생기가 생겼다.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집에서 아내와 엄마 외에는 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던 내 모습은 조금은 기력도 자신감도 없이 내 신세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주된 생각이었던 것 같다.
27살에 결혼을 하고 28살에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내 이름 석자는 어디에 불릴 수도 내걸 수도 없도록 '나'는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많이 들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생겨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는 일이 무엇보다 위대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나도 알지만, 나 자신의 모습이 희미해져 가는 것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일하는 워킹맘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도 나가면 뭐라도 할 수 있고 월 200이라도 벌 수 있는 일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하루종일 맡겨둔 채 9 to 6의 일을 구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커가는 순간을 분주하지 않게 천천히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쁜 엄마로 인해 아이들이 속상해하거나 슬퍼지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의 이름을 포기하고 엄마와 아내로만 살기로, 당분간은 그러기로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첫째가 5살이 되던 해, 아이가 어느 정도 컸다 싶었다. 나의 말을 다 이해하고 알아듣고, 등원준비에 내 손이 전혀 필요하지 않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해도 되겠다는 신호로 알아차렸다. 그렇게 박사과정 입학을 준비했고 벌써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나의 아이들은 내가 학교 가는 걸 싫어한다. 요일을 아는 첫째는 목요일을 싫어하게 되었고, 요일을 모르는 둘째는 매일 나에게 '엄마, 오늘 학교 가는 날이야?'를 묻는다. 내가 검정색 책가방을 둘러매면, 아이들이 불안한 눈빛을 보낸다. 학교 과제를 하러 아이들 등원과 함께 카페로 나서는 길인데도, 아이들은 엄마가 학교에 가는 것일까 봐 불안해한다. 이제 조금 말을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하게 된 둘째는 '엄마는 좋은데, 학교는 싫어'라는 말을 종종 한다. 연구실에 10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아이들을 8시에 어린이집에 맡긴 첫날에, 첫째는 유독 예민해져서 처음으로 친구와 다투고 집에 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어린이집에 혼자 등원했던 일이 너무 속상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매일 학교에 가는 것도 아니고 딱 일주일에 2번이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무언가를 하기에는 가장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참 감사하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 '생기'를 얻었다. 이 생기는 나에게 아이들과 가정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보살필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아이들만 키울 때는 몰랐는데, 학교를 다니며 나 자신을 조금 더 분명하게 찾게 되고 보니, 아이가 둘이나 있는 이 위대한 과업을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일궜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자랑거리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말로 대놓고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하고 가득 차 있는 기분이 든다.
개강을 했다. 방학 동안 만나지 못했던, 클래스 메이트들을 만나 반가운 인사와 즐거운 담소도 나누고, 익숙한 얼굴들과 식사도 함께한다. 아이들과 온전히 분리된 시간, 누군가의 엄마가 아내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만 불리는 그 시간이 내 삶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잘 채워진 '나'에 대한 욕구가 다시 가정으로, 아이들에게로 돌아간다.
이번 학기는 연구실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듣게 된 2과목 다 만만치 않은 과제와 시험이 있어서 쉽게 지나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파이팅이다. 이 개강의 설렘과 감사 에너지를 기억하며, 종강까지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