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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Mar 15. 2022

우울할 땐 일기를 쓰세요.

나는 우울할 때, 일기를 쓴다. 

나는 매년 일기장을 산다. 꼭 다이어리 모양으로 나온 일기장이 아니라도, 연초에 문구점에서 눈에 띄는 노트 한 권을 산다. 집에 괜찮은 노트가 있으면 그것이 그 해의 일기장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매년 매년 나는 일기장을 채우고 모았다. 



일기를 매일 쓰지는 않는다. 주로 내 기분에 따라 쓴다. 아주 우울한 날에는 꼭 쓰는 편이고, 기분이 좋은 날에는 그 일이 지나간 다음에 기억해서 쓰는 편이다. 너무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 싶으면 일기장을 찾아 쓰는 편이기도 하다. 작년부터는 손으로 쓰는 일기는 접어두고 노트북에 일기를 남겨두고 있다. 손으로 쓰다 보니 손이 아파 일기를 줄이게 되는 일이 있기도 하고, 노트북이 켜져 있는 날엔 노트북에 일기를 쓰고, 노트북이 꺼져있는 날엔 손으로 쓰기도 하다 보니 일기가 흩어져 있게 되는 것 같아 보다 간편한 노트북으로 통일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이게 노트북에 남기다 보니 뭔가 찾아 읽는 맛이 조금 줄어든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일기를 주로 내 기분을 털어버리는 용도 또는 친구에게 나의 속 마음을 털어놓는 용도 정도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 쓰는 편이다. 그래서 "오랜만이야"로 시작하는 일기가 꽤 된다. 오랜만에 일기를 찾아온 이유를 적으며 문안인사를 한다. 그렇게 써놓은 일기들은 한 번씩 몽땅 읽는다. 주로 일기를 쓰기 전 앞의 일기들을 읽기도 하지만 어느 날에는 일기를 몇 권 꺼내 놓고선 전부 읽어보기도 한다. 희한한 것은 우울한 날에 그러고 나면 힘이 나고 즐거워지는 마음도 생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가 나를 가장 잘 알아주는 그런 느낌이랄까.. 


나의 역사가 쓰여있는 일기들은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어떤 순간들의 감정과 생각들을 꺼내 준다. 그리고 지금 겪고 있는 비슷한 사건들에 대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그리고 내 마음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힘이 난다. 지금 겪는 이 일들도 지나갈 테니까. 그리고 나는 과거에도 잘 견디고 버티어 냈으니까. 


읽다 보면 웃음이 나는 순간들도 많다. 과거에 했던 다짐을 지금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거나, 지금 미워하고 있는 사람을 그때는 지극히 사랑했던 것을 발견하거나(예를 들면 남편이 지금은 너무 미운데 예전엔 나에게 지극 정성으로 잘해주며 알콩달콩했던 뭐 그런.. ), 소소하게 기억하지 못했던 기분 좋았던 일들이 적혀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일기를 쓰고 싶은 날이었다. 아침 10시부터 시작된 우울함이 지금 밤 10시까지 계속돼서, 30분이나 요가를 하며 마음을 달랬는데도 달래지지 않아 일기를 쓰러 온 참이었다. 왜 우울했나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의 모습을 SNS로 보며 나도 친구도 만나서 놀고 싶고 커리어도 쌓고 싶은데 애 둘만 보며 집에 갇혀버린 신세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래서 SNS 안 하는데,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 때문에 잠깐 들춰봤다가 하루가 이렇게 우울해져 버렸다.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애를 낳지 않았다면부터 시작해서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뭐 이런 생각들까지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래서 다시 그 생각들 털어버리려 일기 쓰러 왔다. 


그래서 이 늦은 밤에 나는 일기를 쓰러 간다. 그리고 옛날 일기를 읽으며 또다시 내 마음을 들여다볼 것이다. 오늘 나의 일기장에서는 어떤 위로를 발견할 수 있을까. 사실 기대는 없다. 지금은 매우 우울한 기분만이 나를 뒤덮고 있기에 그런 기대로 일기장을 열어보는 것이 아니다. 우선 내 마음을 다 털어놓고 그리고 생각해보자. 

나는 우울한 날에 일기를 쓰러 간다. 그래서 오늘 그 일기를 쓰러 간다. 지금. 


덧, 

나태주 시인님께서도 "힘들고 어려울 때 글을 쓴다고 했는데, 바로 그럴 때 글을 쓰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글쓰는 것은 심리적인 어려움, 좌절 등의 마이너한 감정에 도움이 되고, 이러한 감정을 좋은 쪽으로 바꾸어주신다고 언급하신 적이 있다. 


당신, 우울하고 불안하고 좌절스러운 마음이 드시는가? 일기를 써보시라. 아무도 모르는 곳에 내 마음을 풀어내어 적어보면 한결 후련해지기도 하고 정리도 되고 그 안에 일말의 밝고 긍정적인 것도 발견하실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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