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러 가는 길

배아이식의 날

by 함예

새벽 5시. 너를 만나러 간다고 설레어서였을까. 평소에 잠이 많던 나인데 눈이 금방 떠졌다. 오늘 너를 만나러 가는 시간은 10시 9분. 기지개를 켜고 곧장 거실로 나와 운동 매트를 펼쳤다. 몇 달간 반복해 오던 유튜브 채널 ‘빵느’와 ‘소미핏’의 영상을 따라 골반 스트레칭을 한다. 온몸에 혈액순환이 잘 되는 게 좋을 것 같아 가볍게 유산소 운동도 따라 해 본다. 원래는 가볍게 산책을 다녀올까 했지만 전날밤 비가 온 탓에 산책을 할 수 없었다.


운동 후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다. 상쾌하게 샤워하고 싶지만 오늘 만나게 될 네가 향에 민감하고 약하다는 이야기에 바디워시를 사용하지 못하고 참는다. 간단한 물 샤워 후 엄마가 만들어준 계란찜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소풍 가는 날 아침처럼 배속에서 무언가 잔잔한 물결이 일렁인다. 화장을 할 순 없기에 간단히 스킨로션만 바른다. 그래도 머리만큼은 예쁘게 단장을 한다. 그래도 너를 처음으로 만나는 중요한 날이니까.


아직은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0.2cm에 불과한 세포겠지. 그래도 운이 좋다면 나의 소중한 존재로 성장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지금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넌 내게 특별한 존재다.


엄마아빠의 호위를 받으며 병원으로 간다. 시술할 때 방광이 가득 차 있어야 너를 나의 자궁에 넣을 때 그 길이 더 잘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중간중간 물을 마시며 방광에 적당한 양의 소변을 만들어내야 한다. 도착지의 반 정도 갔을 때였다. 이미 방광이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아침에 운동한 후 물을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앞으로 2시간은 더 소변을 참아야 하는데 잠시 아찔해진다. 그래도 이내 나는 “그래. 소변 참는 게 뭐 대수라고. 소변 오래 참기는 내 특기지 뭐!”라고 생각하며 최대한 방광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려고 애쓴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9시 20분. 딱 적절한 시간에 도착했다. 수술실로 가서 도착확인을 하며 채혈을 해야 하는지 간호사에게 묻는다. 간호사는 채혈 후 다시 돌아오라고 일러준다. 나는 채혈실로 가 왼쪽 팔을 내민다. 원래는 오른팔의 혈관이 찾기 훨씬 수월해 오른팔을 내밀었어야 하는데 이날은 나도 모르게 왼손을 내밀었다. 다행히 채혈해 주는 분이 전문가답게 왼팔에서 단번에 혈관을 찾아낸다. 하지만 이 혈관은 조금 아플 수 있다고 찌르기 전에 미리 경고를 한다. ‘아, 내가 왜 왼팔을 내밀었지’ 잠시 생각이 들지만 이내 왜 그런지 깨닫는다. 지난번 자궁경 때 수술실 위치 상 무조건 링거 바늘을 왼쪽에 꼽아야 한다는 간호사의 지시에 왼팔을 내줬지만 그녀는 여러 차례 혈관 찾기에 실패했었다. 시술 이후에도 한동안 그쪽 혈관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내심 채혈해 주시는 분의 스킬을 더 믿었나 보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수술 후 콩주사를 맞기 위해 팔을 내밀었을 때 간호사는 정확히 같은 혈관에 주사를 꽂았으니 말이다.


선택의 기로


채혈 후 수술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간호사는 곧 나를 호명했다.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약이 얼마나 남았나 개수를 확인했다. 오늘 병원에 오기 전 이식을 위한 정보를 찾던 중 나는 시험관 카페에서 사람들이 콩주사나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맞아 몸의 면역력을 낮춰줘야 착상이 잘 된다는 글을 본 적 있다. 콩주사는 인트라리피드(Intralipid)라 불리는 주사제인데 배아 착상을 방해하는 자연살해세포(NK Cell)의 과도한 활성을 낮춰줘 착상률을 높여준다고 한다. 콩기름 성분의 인트라리피드가 들어있어 '콩주사'란 별칭으로 불린다. 원래 자연살해세포 수치가 높으면 면역글로불린이라는 주사제를 맞지만 이 약은 비급여로 가격이 무려 70만 원 가까이한다고 한다.


간호사가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자 나는 간호사에게 콩주사나 면역 글로불린 주사는 오늘 채혈 결과에 따라 처방이 되는 거냐고 묻는다. 간호사는 의사 선생님께서 따로 처방을 내려준 건 없지만 원하면 요청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더 효과가 좋다는 70만 원짜리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요청하고 싶었으나, 처방이 나온 것도 아니고 이미 시험관을 하며 적지 않은 돈을 쓴 나는 진심과는 다르게 소심하게 콩주사를 요청한다. "그래, 콩주사라도 맞는 게 맞지 않는 것보다는 효과가 좋겠지"라고 자기 위안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나의 NK Cell 수치가 높으면 어쩌지”, “콩주사만 요청해도 되는 건가” 하는 내 마음속의 소심한 혼잣말들이 나를 괴롭힌다. 그래도 이내 마음을 다잡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는다. “콩주사라도 어디야. 요청 안 했으면 이것도 못 맞았을 텐데”


삼신할머니에 받칠 사탕


이후 탈의실로 안내를 받는다. 난자채취와 자궁경을 할 때와 달리 오늘은 하의 탈의만 하면 된다. 수술복을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주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삼신할머니에게 드릴 사탕을 넣어야 하는데 어쩌지"생각한다. 이 미신은 시험관 카페나 블로그에서 사람들 사이에 도는 이야기로, 사탕을 좋아하는 삼신할머니께 바칠 사탕을 준비하면 할머니가 그 사탕으로 아이들을 꼬셔 데리고 와주신다고 한다. 약간은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론 얼마나 절박하길래 이런 미신까지 만들어졌을까 하는 웃픈 생각이 든다. 내가 이 미신을 알게 된 건 아는 동생 덕분이었다. 이식 전에 만나고 싶었지만 기자일로 바쁜 이 친구의 스케줄로 만남이 미뤄지며 할 수 없이 카톡으로 시험관 이야기를 꺼낸 후였다. 고맙게도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다가 발견한 건지 그녀는 내게 이 미신이야기를 들려주며 병원 갈 때 들고 가라고 사탕을 선물해 보내줬다. 아직 미혼일뿐더러 임신과는 아직은 거리가 먼, 어린 친구가 나를 위해 정보를 찾아보고 살뜰히 챙겨주는 모습에 나는 적잖은 감동을 받았었다.


이에 나는 삼신할머니께 드릴 사탕을 정성스럽게 골라 포장해 갔다. 정성과 간절함을 담아, 이 뇌물이 삼신할머니를 감동시키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간절함은 사람을 비이성적이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내가 마음 편하기 위해선. 이미 듣게 된 미신인데 안따르고 찝찝할 바엔 따르고 마음 편한 게 나으니까. 하지만 수술복엔 주머니가 없을 것이란 건 예상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이 사탕을 브라 안에 감춰놓고 수술실로 입장했다. 모성과 관련 있는 우리 몸의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젖가슴에 가장 가까운 곳에 말이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수면양말을 신는 것도 까먹지 않았다. 이 또한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로 이식하는 날 발을 최대한 따뜻하게 해 주는 게 좋다는 누군가의 말 때문에 말이다. 간호사들이 유난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잠깐 고민했지만 그보다는 내 마음이 편한 게 더 중요했다.


민들레 홀씨

dandelion-8809189_1280.png 민들레 홀씨. 출처: Pixabay

수술 대기실로 들어가 앉아있었다. 난자채취때와 자궁경을 할 땐 이곳에서 모두 링거를 꽂고 들어갔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했지만 이번엔 그저 편안히 앉아있다가 안내를 받고 수술실로 입장했다. 입장 후엔 곧장 침대에 누우라고 했다. 콩주사를 먼저 놓아주는 건가 하며 기다리고 있었지만 발목에 네임택만 달아줄 뿐이었다. 몇 분 후 간호사가 와서는 침대 그대로 수술실로 옮겨 배아 이식을 진행하게 될 거라고 했다. 난생처음 침대에 누운 채로 사람들에 의해 옮겨지는 경험을 했다. 수술실은 머지않은 곳에 있었다. 수술실에 들어가자 간호사가 나의 이름을 확인한 후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Y님 배아사진 띄워주세요”. 두근두근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배아사진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5분쯤 지났을 까 간호사가 다시 요청했을 때 수술실과 연결된 뒤쪽의 연구실로 보이는 밀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5분 더 걸려요”


이내 화면에 배아의 사진이 떠올랐다. 민들레 홀씨처럼 생긴 둥글고 커다란 배아.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 옆에는 다소 찌그러져 보이고 크기도 조금 더 작아 보이는 또 다른 배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엔 또 조그맣게 동그란 무언가가 있었다. "배아가 3개인 건가? 하나가 상태가 좋지 않아 더 녹인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사진에서 나는 PGT-A 검사에서 ‘정상’으로 통과했던 그 배아가 저 민들레 홀씨처럼 생긴 아름다운 배아일 거라 생각했다. PGT라는 것은 (Preimplantation Genetic Testing)의 약자로, 착상 전 유전자 검사를 의미한다. 대부분은 PGT-A 검사가 진행되는 데 이는 염색체의 수적 이상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라고 한다. 유전자 이상은 임신실패의 원인 중 하나가 되기 때문에 PGT 검사를 통해 좋지 않은 배아를 걸러내 유전적으로 건강한 배아를 선별하는데 쓰인다.


민들레 홀씨 옆에 찌그러진 배아를 보며 불안한 마음이 갈급해오자 참지 못하고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물었다. "저 배아는 왜 찌그러져있는 거예요? 그 옆에 작고 동그란 저건 뭐예요? 배아가 세 개인 거예요?". 간호사는 살짝 웃음기를 머금은 말투로 말한다. “아마 의사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실 거예요”.


의사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반갑게 인사하며 수술실로 들어온다. “힘 빼세요”, 의자에 앉자마자 나의 질에 어떤 기구를 넣었다. 아마도 고정을 위해 필요한 장치인 듯했다. 이번엔 마취가 없는 상태였기에 그 불편감이 다 느껴졌다. 이에 더해, 배아를 적절한 위치에 안착시키기 위해서 초음파를 병행해야 했는데 하필 차가운 초음파로 힘껏 누르는 부위가 방광 부근이라 이질감과 불쾌감까지 환상의 콜라보였다.


간호사가 의사 선생님께 환자가 사진 속 배아 상태에 대해 궁금해한다고 언질을 주자 의사 선생님은 말하셨다. “찌그러진 모양은 상관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점점 펴져서 옆에 보이는 배아처럼 동그래진답니다” 이후 시술을 이어가던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더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내가 궁금했던 찌그러진 배아 위에 보이던 작고 동그란 형태는 아마도 배아가 뚫고 나온 투명대가 아닐까 싶다. 의사 선생님께서 설명해주시진 않았지만 인터넷을 찾다 보니 5일 배아가 부화가 진행돼 포배기상태가 되면 배아가 투명대를 뚫고 나온다고 한다. 부화 포배는 착상 준비가 완료된 상태의 배아로 일명 '감자 배아'라고 불리는데, 배아가 투명대를 완전히 벗어난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아마 저 작고 동그란 건 찌그러진 배아가 투명대를 뚫고 나온 흔적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자궁 입구 쪽에 출혈이 조금 있어서 닦아냈어요. 이게 있으면 착상을 방해할 수 있거든요”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된 건가 싶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덧붙여 “아마 시술 후에 약간의 피가 비치거나 갈색혈이 비칠 수 있는데 이상은 없는 거예요. 괜찮은 거예요”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이후 의사 선생님은 수술실 뒤편의 연구실로 보이는 밀실로 가서 나의 배아를 데리고 오셨다. 이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모두 상급배아예요. 아주 좋아요” 의사 선생님 특유의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반응에 대해 나는 늘 생각했다. 자신이 쓰는 약에 대해 환자의 몸이 잘 반응하거나 임신확률이 높은 건강한 배아를 볼 때 흥분하게 되시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의사 선생님의 이 반응은 매번 내게 깊은 안도감을 주었다. 배아를 가져온 이후 가느다란 관처럼 생긴 카데터가 내 안에 들어갔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시술은 정말 금방 끝이 났다. 의사 선생님은 웃으며 나에게 말하셨다. “임신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순간 빛이 보였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난자채취하고 나서는 “임신할 수 있어요”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번엔 “임신될 거예요”라는 한층 확장된 긍정의 문장이 나에게 큰 힘이 됐다. 간호사들은 다시 나의 침대를 끌어 수술실 밖으로 내가 원래 누워있던 곳으로 데려갔다.


환희의 눈물


간호사는 내가 요청했던 콩주사를 팔에 꽂아주며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콩주사는 분자가 커서 혈관통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이 조금 풀리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형언할 수 없는 환희와 기쁨의 눈물이었다. 이 순간 친척동생이 시험관을 통해 얻은 쌍둥이들의 이름을 왜 환희, 환호라고 지었는지 납득이 갔다. 무언가 벅참으로 가슴이 꽉 차 부풀어 오르는 기분. 그동안 고생했던 게 떠올라서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순수하게 기뻐서 흘러나오는 눈물이었다. 나의 버킷리스트였던 옐로스톤에 처음 갔을 때 느꼈던 환희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나의 아이가 될지도 모르는 작은 세포가 내 자궁 안에 들어와 있다니. 이제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게 이 작은 세포와 연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에 나는 마음속으로 이 작은 세포에게 말을 건넸다. 잘 자라달라고.


콩주사를 다 맞으려면 2시간은 걸릴 테니 그동안 나는 눈을 감고 이 아이에게 행복한 장면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와 아빠가 될지도 모를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나와 K가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우리가 가장 뜨겁게 사랑했던 학교 캠퍼스에서의 추억들, 연애시절 함께 갔던 여행지들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소환해기 시작했다. 찬란했던 그 계절들을 말이다. 그렇게 연애시절부터 시작한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타임라인은 우리의 결혼식을 지나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우리의 첫 번째 신혼집까지 흘러갔다. 지난 4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행복했던 순간들 만을 떠올리려 애쓰며 마치 영화관의 영사기처럼 내 머릿속에서 재생시켰다. 마치 이 세포들이 이 영화 속 유일한 관객이라도 되는 마냥.

pray-9202707_1280.jpg 이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뿐. 출처: Pixabay

갑자기 세상을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이 평화로워 보였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배아라는 씨앗을 내 자궁에 심을 수 있다니. 이런 신비로운 경험은 처음이라서. "잘 착상되어야 하는데"라는 걱정과 불안보다는 그저 이 순간 나와 K의 유전자가 담긴 배아가 내 몸 안에 들어왔다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 경이로웠다. 평소라면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내 강박적이고 소심한 성격 때문에 결과가 확실해질 때까지 절대 속단하지 않고 쉽게 만족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난자채취부터 시작해 몇 달간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배아이식의 단계까지 왔다는 사실 자체가 대견하고 대단스럽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집중하고 싶었다. 결과가 어떻게 됐든 이 작은 생명체가 내 몸 안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눈물이 날 정도로 경이로웠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또 다른 감정이었다. 그렇게 너를 기다리는 시간의 카운트다운이 진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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