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관문

난자채취의 날

by 함예

배아를 이식하는 날 생각보다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로울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이미 익숙해진 병원의 공간 때문일 것이다. 배아 이식까지 오는 과정은 내 예상보다 훨씬 길었다. 4월 말에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병원부터 내원해 필요한 검사를 받고 시험관을 준비해 시작했지만 막상 배아를 이식하게 된 건 8월 중순이었으니 말이다.


과배란 주사의 시작


시험관 아기 시술. 다른 말로는 체외수정, IVF(In Virtro Fertilization)이라고 한다.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정자를 채취해 이를 체외에서 수정시킨 후 2-5일간 배양해 여성 자궁 내에 이식하는 과정을 말한다. 과배란 유도제를 통해 여러 개의 난포가 함께 자라도록 만들어 난포가 적당한 크기로 자라면 난자 채취과정을 거친다. 참고로 난포는 난자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머니 모양의 세포 집합체라고 한다.


6월 3일. 생리를 시작하고 드디어 내원했다. 이제 진짜 난자재취를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설렘도 잠시 난자채취 전까지 약 10일간 과배란 주사를 내 배에 직접 놓아야 하는 일이 현실이 됐다. 시험관을 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예상했던 순간이지만 이를 마주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6월 4일부터 드디어 주사의 늪이 시작됐다. 3일간은 배란유도제인 폴리트롭(Pollitrope)과 난포를 키우는 주사인 IVF-M HP만 맞으면 됐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조기배란억제제인 세트로타이드(Cetrotide)가 추가됐다. 매일 3개의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이었다.

화면 캡처 2025-08-26 154334.jpg 폴리트롭 주사. 출처: 유튜브/park 간호사

주사 처방을 받고 상담실로 가서 간호사에게 주사 놓는 방법과 순서들을 교육받았다. 폴리트롭은 주사가 일체형이라 쉬워 보였지만 나머지 두 개의 주사는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때 나를 벙찌게 만들었다. 다행히 남편이 정신 차리고 설명을 열심히 적어둔 덕분에 집에 와서 헤매지 않고 정신을 부여잡을 수 있었다.


IVF-M HP 주사는 증류수가 들어있는 바이알에서 물약을 주사기로 다 빼서 하얀 가루만 들어있는 바이알에 다시 넣어 약을 조제해야 했다. 이때 가루약이 잘 녹을 수 있도록 병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살살 잘 돌려줘야 했는데, 세게 흔들면 기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후 잘 제조된 약을 다시 주사기로 뽑아 준 후 주삿바늘을 바꿔주면 드디어 주사 맞을 준비가 끝난다.

화면 캡처 2025-08-26 153907.jpg IVF-M HP주사. 출처: 유튜브/Park 간호사


세트로타이드도 IVF-M HP주사와 비슷했지만 이 주사는 다행히 믹스할 용액이 주사기 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주사기 그대로 가루약이 들어있는 바이알에 넣어주면 됐다. 가루가 잘 녹도록 손에 두고 잘 돌려줘야 하는 건 똑같았는데 이 주사가 양도 좀 더 많고 커 보였다. 외관만으로도 부담이 된다고 해야 할까. 이 주사에는 회색 바늘과 노란색 바늘이 들어있었는데 노란색 바늘은 주사기에 끼워 약을 제조해 줄 때 사용하면 됐고, 제조가 완료된 후엔 조금 더 가느다랗고 짧은 회색바늘로 교체해 주면 주사할 준비가 완료됐다. 하지만 이 세트로타이드는 맞고 난 이후 그 부근이 빨갛게 부풀어 오르거나 가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해서 잔뜩 긴장했다. 실제로 주사 이후에 가려움이 발생하긴 했지만 다행히 큰 부작용이 없이 가라앉았다.

화면 캡처 2025-08-26 154115.jpg 세트로타이드 주사. 출처: 유튜브/park 간호사

마지막으로 난자채취 36시간 전엔 맞아야 하는 배란유도제인 데카펩틸의 관문이 남아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무조건 맞아야 하고 아프기로 소문이 자자한 주사였다. 내게 처방된 용량은 무려 데카펩틸 주사 3방! 이 날 처음으로 주사하며 가장 많은 피를 보고 눈물을 찔끔했던 것 같다. 한 방을 맞은 후 남겨진 주사를 보고 “나머지 두 방을 어떻게 주사하지” 생각하며 절망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주사를 맞으면 맞을수록 배가 불편해졌다. 마치 뱃속에 진짜 알이 자라나기라도 하는 듯이 걸을 때마다 출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쉽게 몸이 피곤해졌고 점점 산책도 힘들어졌다. 만보씩 걷는 게 도움이 된다는 말에 주사를 맞으면서도 매일 만보씩 걸으려고 노력했다. 그 좋아하던 커피도 단숨에 끊게 됐다. ‘커피를 끊을 수 있는 거였구나’ 갑작스러운 내 안의 나도 모르던 단호함에 스스로 놀랐다. 단백질 위주의 식사가 좋다는 말에 매일 어머님이 보내주신 한우와 엄마가 매일 차려주는 고기반찬과 생선을 챙겨 먹었다. 부디 난자가 충분히 잘 자라 주길 기도하면서.


낯섦과 두려움


사실 이 시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낯섦’에서 오는 막막함이었던 것 같다. 주사를 처음 맞는 날 주사를 제조하며 허우적거리던 나, 그리고 거울 속에 보이는 주사기를 든 내 모습, 생각보다 태연하게 나의 배를 찌를 수 있는 단호함. 그리고 난자채취 후기를 찾아보며 불현듯 엄습하는 불안감. ‘난자가 많이 나와야 할 텐데’, ‘양보다는 질이 더 중요하다고 하던데’, ‘난자가 많이 채취되지 못하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진 결과를 알 수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soap-7305178_1280.jpg 이런 모습과 비슷할까. 출처: pixabay

중간중간 초음파를 보러 병원에 내원도 했는데 초음파 속 광경은 기이했다. 주사를 맞은 이후 거품 같기도, 벌집 같기도 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주사를 맞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거품들도 점점 더 그 크기가 커졌다. 그래도 어느 순간엔 '그래. 너를 만나는 첫 관문이 시작됐구나'생각하며 겸허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망의 난자채취의 날


지난 2주간 오늘만을 위해 살아왔다. 난자채취 하루 전날엔 드디어 주사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는데 자랄 대로 자란 난자들 때문인지 걸을 때마다 배가 너무 불편했다. 부디 이 증상이 긍정적인 신호이길 바라며 병원으로 향했다. 난자는 향에 약하기 때문에 이날은 선크림조차 금지됐다. 가볍게 기초화장만 하고 최대한 편한 옷차림을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수술실에 도착해 탈의를 한 후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수술모자까지 쓰고 나니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수술대기실로 들어선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친절한 간호사님 덕분에 긴장이 풀리기도 잠시, 간호사는 나의 왼팔을 요구했다. 링거를 맞기 위해 혈관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보통 나는 오른팔 혈관이 찾기 쉽다. 반면 왼팔혈관을 찾을 땐 간호사들이 애를 먹곤 했다. 이날 역시 그랬다. 이에 내가 “오른팔이 혈관 찾기 더 쉬우실 텐데 오른팔에 하면 안 될까요?”라고 말했지만 간호사는 수술 방 구조상 왼쪽에 무조건 놔야 한다고 했다.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손목의 혈관을 찾아 링거를 꽂게 됐다. 이후 대기실에 앉아 몇 분쯤 기다렸을 때 간호사는 나를 호명하며 수술실로 안내했다.


모든 게 낯설었다. 수술실로 들어가 누웠다. 마취선생님이 오기 전까지 수술방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고 있는데 “앗”. 간호사가 소독을 한다며 차가운 무언가로 내 주요 부위를 닦아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주치의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인사말과 함께 나의 생년월일을 확인한 후 "임신할 수 있어요"라는 긍정적인 말을 전해주시며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이후 마취선생님이 들어왔고 그렇게 10, 9, 8, 7… 숫자를 다 세기도 전에 잠에 빠져들었다.


몽롱하게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침대에 옮겨져 회복실로 이동 중이었다. 나는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간호사에게 물었다. “난자채취 많이 됐나요?”



복수 찬 배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다행히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의식을 회복하자 간호사는 내게 와서 23개의 난자가 채취됐다고 말해줬다. 안도감이 들었다. 난자의 질이 어떤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양이 많아 안심됐다. 양이 적으면 확률도 그만큼 낮아졌을 테니 말이다. 이후 간호사는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난소채취 양이 많아 난소 과자극 증후군 위험성이 있을 수 있으니 하루에 이온음료를 최소 1리터 이상 마셔야 한다고 했다.


난소과자극증후군은 난소에서 여러 개의 난포가 자라게 되면서 호르몬 증가와 함께 사이토카인 등의 분비가 증가돼 혈관 투과성이 증가하면서 발생한다. 이로 인해 모세혈관에서 혈관내액이 바깥으로 이동하면서 축적돼 복수, 흉수 등이 발생한다고 한다. 복부가 팽만해지거나 통증을 느낄 수 있고 호흡곤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난자채취에 관해 찾아볼 때 여러 무서운 후기를 본 터라 덜컥 겁이 났다. 부디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바랐다.


어지러움증이 가시고 난 후에야 나는 회복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를 기다리던 엄마와 남편은 엉거주춤 걸으며 나를 보며 안도의 표정을 내 비췄다. 다른 사람들은 다 빨리나 오는데 나만 시술 시간도 길고 늦게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도 시험관의 첫 관문인 난자채취를 잘 끝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뻤다. 이제 시작이었지만.

woman-5857744_1280.jpg 복수로 배가 빵빵해지는 유쾌하지 않은 경험. 출처: pixabay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온음료를 닥치는 대로 마시기 시작했다. 복수가 이미 조금은 차 있는 상태라 숨 쉬는 것이 불편했다. 밤에 잠을 잘 땐 더 불편했는데 똑바로 누우면 숨 쉬는 것이 더 불편했기에 베개를 잔뜩 놓고 앉아서 잠을 자야 그나마 숨이 쉬어졌다. 어떤 후기들을 보면 복수가 너무 찬 나머지 응급실에 가서 주사기로 복수를 빼내야 했다고 하는데 다행히 나는 그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다. 5일 정도가 지나니 이 증상도 점차 수그러들었다.


기다림의 시간


내가 다니는 차병원은 어플을 통해 나의 난자가 몇 개 채취됐는지, 몇 개가 수정됐는지, 동결배아는 몇 개인지 확인이 가능했다. 단, 나의 경우 5일 동결 배아를 이식하기로 결정한 탓에 다음 내원 때까지 23개의 난자 중 몇 개가 수정됐는지까지만 어플에 나올 뿐, 몇 개의 배아가 5일 배양에 까지 성공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수 밖엔 없었다.

prayer-6764197_1280.jpg 조용한 희망. 출처: pixabay

시험관을 준비하면서, 아니 임신을 준비하면서 남편과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단어가 있다. “조용한 희망”. 매달 임신시도를 하면서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어김없이 남편은 이 단어를 이야기했다. 그렇게 기다림에 익숙해진 지금 시험관이라는 관문 앞에서 우리는 또 기다릴 수밖에 없다. 조용한 희망을 마음속에 품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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