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여자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에게 받는 프러포즈, 일생에 단 하루 동화 속 공주님이 될 수 있는 결혼식날, 그리고 임신테스트기에서 두줄을 보며 엄마가 되는 날과 같은 일 말이다. 이 순간들이 누군가에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평범한 삶처럼 보이는 이 평범함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비혼을 꿈꿔본 적도 딩크를 꿈꿔본 적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가족을 꾸리는 일은 내겐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였다. 사랑은 내게 가장 큰 가치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종종 엄마는 나에게 말하곤 했다. "뭐 하러 힘들게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 편하게 혼자 살아"라고 말이다. 이럴 때면 난 엄마에게 "엄마는 우리를 낳고 행복했으면서 왜 그 행복을 내게서 빼앗아 가려고 해!"라고 답하곤 했다. 아마도 엄마는 우리를 키우며 정작 본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포기한 채 남은 정체성이라곤 '엄마'뿐이었기에, 내가 더 다채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길 바라셨나 보다.
결혼준비를 한창 하고 있을 때 종종 힘들어하던 내게 아빠는 말했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야. 그러니까 그 순간을 즐겼으면 좋겠다"라고. 지나고 보니 아빠 말이 맞았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 결혼준비하느라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돌아보니 이때만큼 행복하게 빛나던 순간도 없던 것 같다.
결혼적령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기까지 내 삶도 드디어 정상궤도를 찾아 평범해지는 듯했다. 결혼 후 타국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해야 했기에 우린 자연스럽게 1-2년 간은 신혼생활을 즐기기로 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후 우리의 2세를 계획하자고 말이다.
파워 J인 우리 부부는 당연히 계획임신을 준비했다. 임신준비 3개월 전부터 엽산제와 비타민을 챙기며 몸을 챙겼고 그동안 복용하던 피임약도 중단했다. 유독 주변에 어렵지 않게, 심지어는 한 번의 시도만에 임신에 성공한 친구들을 보았기에 나 또한 그럴 줄 알았다. 둘 다 어렸고 건강하다고 생각했으니. 이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알게 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매 달 생리가 시작되며 받기 싫어도 받게 되는 결과표에 마음은 자주 무너져 내렸다. 산전 검사에서도 문제가 없었고 심지어 생리주기도 정확한데 대체 왜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인지 납득되지 않았다. 슬픔의 감정은 분노로 바뀌었고 이내 억울함이 되어 임신준비를 하는 몇 년간 마음을 짓눌렀다.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 임신했다는 소식에 진심으로 축하하기가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남들은 이렇게 쉬운데 왜 내겐 이렇게 어려운 거야"하는 삐뚤어진 심술궂은 마음이 가득했다.
살면서 이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을까 싶었다.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더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평생 엄마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당연히 없었고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럴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고개를 내미는 순간 나는 무너져 내렸다. 뉴스를 보면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도 그렇게나 쉽게 부모가 되는데 왜 난 이렇게 간절히 바라는데 엄마란 이름이 허락되지 않을까 절망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건 나에겐 가장 큰 슬픔이었다. 평범함이라고 생각했던 그 무언가가 나에겐 평범함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절망감, 패배감은 이 상황에 놓여본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린 난임부부가 됐다. 산전검사에서도 어떤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원인불명의 난임'을 진단받으며. 2025년은 내가 만 35살이 되는 해였기에 조급함은 커졌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산부인과학회에서 노산의 기준을 만 35세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부터 난소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이에 우린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시험관 아기시술(IVF)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누군가는 아직 자연임신을 더 시도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운에 기대어 매달 기대하고 실망하길 더는 반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을 허비하다가 결국 시험관(IVF)밖에 답이 없어졌을 땐 더 절망할 것 같았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험관을 시도하는 게 예후도 더 좋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시험관 여정은 시작됐다.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생각보다 이 과정은 훨씬 고통스러웠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감내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수 차례 끝에 결국 임신을 해냈다'라는 글들을 볼 때면 이제 '수 차례'라고 적인 그 세 글자 안에 얼마나 많은 인내와 고통이 담겨있는지 읽어낼 수 있게 됐다. 이 세계에서 난 아직 막 발을 들인 햇병아리 수준이지만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나의 난임일기를 기록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