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먹는 남자가 사랑받는다 2
나는 요리하는 걸 싫어한다. 요린이라고는 할 수 없고(이미 주부경력 8년 차라) 그냥 요리하는 게 싫다.
일단은 품이 많이 드는 것이 싫다.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다듬고 끓이고 치우고 그 일련의 모든 과정이
너무나도 많은 노동력을 요한다. 그걸 즐기는 사람들도 많던데 난 도통 이해도 가지 않고 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다.
하지만 매일매일 어쩔 수 없이 요리를 한다.
요리라는 단어가 어떻게 보면 거창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그래서 나랑은 도통 어울리지 않아
그저 밥 차리기를 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어쨌든 밥 차리기도 요리에 포함되는 행위이니
매일 요리를 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최대한 간단히 요리한다.
시간이 많이 들고
재료를 다듬기 힘들고
과정의 반복이 심하고
여러모로 인내와 노동이 심한 요리는 웬만하면 안 한다.
사실 난 내가 한 요리보다 사 먹는 것이 훨씬 맛있다.
일단 요리를 하면 있던 체력을 다 써버려서
다 차리고 나서는 숟가락 뜰 힘도 없다.
지쳐서 식욕을 잃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기껏 밥을 다 차리고는 아이들과 남편만 밥을 먹이고
나는 그냥 패스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특히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더 그렇다.
하지만 늘 포장과 배달음식으로만 살아갈 수 없고
아이들에게도 건강한 음식을 줘야 하니
늘 인스턴트 음식으로만 해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편의를 최대한 이용한 요리들 위주로 한다.
에어프라이어나 전자레인지를 이용할 수 있는 요리
간단하게 볶거나 무치는 음식 정도
그리고 국 끓이기.
아이들에게 식판을 이용해서 밥을 준다
식판은 아이들이 얼마나 먹는지 확인하기 용이하고
칸칸이 나눠져 있는 곳에 그래도 최대한 다양하고 고른 음식을 담아낼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할 수 있기 때문에 매일 아침저녁 식판에 음식을 담아 아이들에게 준다.
식판을 이용하는 것은 장점도 많지만
단점이라면 하나 있는 것이
1가지의 국, 3가지의 반찬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 부담감을 업고 매일 저녁
국 한 가지와 반찬 3가지를 고민하고 만들어 낸다.
물론 반찬가게를 이용하기도 하고 인스턴트 음식도 쓰지만
어찌 됐건 식판의 칸들을 채우기 위해 매일 노력한다.
하지만 매일 하는 일은 한계를 가져온다.
아이들이 먹는 국도 거기서 거기라 몇 가지의 국들이 늘 로테이션을 돈다.
국의 내용물을 조금씩 바꿔 변화구를 주기는 하지만
대체로 늘 끓이던 국을 끓이게 된다.
가끔은 아이들의 국을 따로 퍼놓고 남편을 위해 그 국에 고춧가루나 청양고추를 넣어
아이이 국과 어른의 국을 따로 만드는 정도의 노력만이 남편을 위한 최대의 배려가 된다.
반찬도 거기서 거기다.
반찬가게를 이용한다고 해도 늘 먹는 것만 사게 된다.
가끔 새로운 메뉴를 사서 들고 와도 아이들은 대부분 먹지 않고
익숙지 않은 음식들은 어른들에게도 한 번의 시식용이지
다음엔 또 볼 수 없다.
그래서 반찬도 늘 하던 것만 하게 되는.
(이건 나의 궁핍한 변경인 걸까?ㅜ)
요리과정도 최소한으로 하기 때문에
정말 심플하다.
누군가에게 레시피라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요리에 있어 가장 큰 장점은
간을 잘 맞춘다는 것이다.
뭘 만들어도
시중에서 먹어본 듯한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아주 적정한 간 맞추기가
내 음식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랄까.
그래서 요리를 잘 못하지만 아니 안 하는 편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아이들과 남편이 매일 저녁 먹을 수 있을만한 요리를 내놓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크면
어느 식당을 가도
어.. 우리 엄마 음식이랑 비슷한데
하며 어디에서나 집밥같이 느끼지 않을까
아주 특출 나는 우리 집만의 음식은 없어도
어디에서나 집밥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나는 미화시켜 본다.
내 요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런데
특출 난 것도 없고
공들인 것도 아니고
그저 먹을만하다 정도일 뿐인데
남편은 저녁마다 밥을 2 공기씩 먹는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먹는 걸 보고 있노라면
'점심을 굶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매번 "그렇게 배고팠어?" 하고 물으면
"아니, 여보가 맛있게 저녁해 줘서 그렇지"
하고 예쁜 말을 해준다.
그는 연애 때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으면
불평불만이 많은 남자였다.
이 돈 주고 먹을만한 음식이 아니라는 평이 얼마나 많았는지.
한 번은 내가 고른 메뉴인데 나보다 먼저 먹고서는 맛없다고 혹평을 해서
음식을 먹기도 전에 밥맛을 떨어지게 만들었다고
그와 싸우기도 했다.
그랬던 그인데.
내가 만든 저녁을 먹으면서는
음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불평 한마디가 없다.
그래서 신기했다.
또 내 음식이 그렇게 맛있나 착각도 했다.
그런데 한 번은
"여보는 어떤 국이 좋아?" 하고 물어봤는데
"토란국, 쑥국?"이라면서
8년 동안 내가 한 번도 안 해준 국 이름을 댔다.
그는 그런 국들을 좋아하는구나.
나는 늘 아이들이랑 함께 먹을 수 있는 미역국, 소고기뭇국, 된장국 등 흔하디 흔한 국들만 끓여줬는데.
사실은 좋아하는 국도 아니면서
엄청나게 맛있는 것도 아니면서
불평 없이 매일을 맛있게
밥 2 공기를 싹싹 비워낸 거였군. (역시 남이 차려준 밥상이 제일 맛있는 법인가?)
미안하게도 나는 앞으로도 그에게 토란국과 쑥국을 끓여줄 자신이 없지만
그럼에도 매일같이 맛있게 저녁을 먹어줘서
참 고맙다.
30분에서 1시간, 그 잠깐 온 힘을 다해 저녁을 차려내려고 노력한 나에게
잘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위안이 된다.
요즘 그는 야근이 많아 늘 밤늦게 들어온다.
저녁을 밥 2 공기씩 먹는 그가 저녁도 거르고 일하다가 집에 오면 안쓰럽다.
처자식 밥 굶지 않게 돈 벌면서 정작 자신은 저녁도 못 먹고 일하니
요새는 그가 저녁을 먹었는지가 가장 신경이 쓰인다.
얼른 지금 바쁜 시기를 잘 보내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
맛있게 밥 2 공기를 뚝딱 해치우는 그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