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먹는 남자가 사랑받는다
결혼 전 엄마는 내게
신랑 밥 잘 챙겨주라는 조언을 하셨다.
엄마 아빠는 늘 비슷한 문제로 다투셨는데
늘 나오는 레퍼토리 중 하나는
아빠의 "밥투정"이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언제 한 번 나한테 따뜻하게 밥 한 번 차려준 적 있느냐" 며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셨고 엄마는 "어떻게 매일 매번 밥을 차려주냐" 며 다투셨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결혼하는 내게 "신랑에게 밥만 차려줘도 잘 안 싸운다" 라면서
나름의 본인 결혼에서 비롯한 조언을 하셨던 모양이다.
나도 여러 번 둘의 싸움을 목격한 터라
결혼 후 내가 먹지도 않는데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밥을 차렸다.
사실 별 거는 없었다. 어제 먹다 남은 국을 데우고 밥을 뜨고 냉장고에 반찬을 꺼내 상을 차리는 정도였다.
아침을 먹어 버릇하지 않는 나와는 다르게 그는 되도록이면 아침을 챙겨 먹는데
아침밥을 차려주는 나를 보면서 그는 어쩌면 '내가 결혼을 하긴 했구나' 실감했을 수도 있었겠다.
나는 아침부터 밥을 입에 넣을 정도로 입맛이 없었지만 상을 차렸고 아침밥을 먹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먹는 그를 바라보고 소소하게 대화를 했다. 그리고 출근하는 그를 마중했다.
결혼하고 한 두 달 했으려나...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나는 임신을 했고
임신과 함께 아침 상 차리기는 끝이 났다.
원래도 올빼미족인 나는 밤늦게 잠드는 날이 많았고 아침잠이 많았는데
임신초기에는 진짜 잠이 막 쏟아져 아침에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결혼맞이 이벤트성 아침 차리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결혼 8년 차인 지금까지
그의 생일날이 아니면 나는 그의 아침을 차리는 일이 없다.
가끔 새벽에 일찍 일어난 날이면 그가 출근 준비로 씻을 때
간단하게 아침을 차려준 적도 있지만 진짜 1년에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는 매일 아침 스스로 자신의 아침을 챙겨 먹는다.
한식을 좋아하는 그는 어제 먹다 남은 국이 있다면 대부분 밥을 먹고 출근한다.
늦게 일어나면 우유나 두유 한잔
밥 먹을 반찬이나 국이 없다면 콘푸라이트, 빵, 과일 등등 요깃거리를 찾아
그날그날 아침을 잘 챙겨 먹는다.
그러면서 한 번도 나에게
아빠가 하듯 "밥투정"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밥은 자신이 차려먹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아주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내가 차려주면 고마운 일이고 안 차려 준다고 해서 서운하다거나 차려줬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도 않았다
처음엔 여러 번 그의 마음을 떠봤다.
실제로는 그래 마음속으로는 내가 차려주길 원하고 있겠지
안 차려주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있겠지
나만 혼자 지레짐작했었다.
그러나 여러 번 물어봐도 그는 그런 마음을 내비친적이 없었다.
오히려 본인이 차려먹는 게 더 편하다는 듯 말했다.
조금은 걱정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마저 없다.
그래 아빠와 그는 다른 사람이구나.
엄마의 결혼 생활과 나의 결혼생활은 다르지
엄마의 조언은 엄마의 결혼생활에만 해당하는 것.
지금의 나는 그에게 아침을 차려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정말 벗어났다.
가끔 너무 늦어 본인이 먹은 식기를 설거지 못한 날에는
카톡이 와 있었다.
아침에 너무 바빠 설거지를 못했는데 부탁한다며.
아침을 차려주지도 못하는데 이것쯤이야 가뿐한 마음으로 설거지를 한다.
밥 차리는 일로 싸움을 하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참.. 진짜 별것도 아닌 일로 왜 이렇게 여러 번 싸우는 걸까 의아했다.
그러나 결혼을 해보니 결혼생활 중에 밥을 먹는 행위는 참 많은 범위를 차지하고 있다 생각 든다.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을 차리기 위해 장을 보는일
장을 본 것을 정리하는 일
누군가가 음식을 하고 상을 차리는 일
그리고 다 먹은 것을 치우는 일
심지어 장보고 먹으면서 나온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일까지
"밥"과 관련된 일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 정말 중요한 일이긴 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침밥을 본인 스스로 잘 챙겨 먹고 또 잘 치워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내를 편하게 해주는 일인지 그는 알고 있을까.
비록 내가 차려주진 못하지만
굶지 않고 든든히 잘 챙겨 먹어줘서
남편, 정말 고마워^^